Page 183 - 오산문화총서 8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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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나 용인 구성의 첫째 의미는 ‘말(馬)’이다. 용인시 구성면의 진산 석성산 자락에 마북동(馬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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洞), 마평동(馬坪洞), 마가(馬加)저수지, 마성(馬城)저수지, 마성(馬城)IC 등의 지명이 존재한
다. 모두 말(馬)과 관련된 이름이다. 영동고속국도의 첫 터널의 이름 또한 마성(馬城) 터널이다.
2) 용인시 석성산(石城山) 북쪽에 할미성(老姑城)이 있다.
할미성은 용인시 기흥구 동백동 산23-1번지에 위치한다. 이 성은 마고선인(魔姑仙人)이 쌓은
것이라 하여 노고성(老姑城), 마고성(魔姑城) 또는 마수성(馬首城)으로 불린다.
할미성(老姑城)을 누가 언제 어떤 목적으로 쌓았는지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다. 다만 대동
야승 제8권 54호에 ‘이 성은 할미성인데 구전하는 설화가 있다’는 간단한 기록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이 설화는 삼국사기 백제 건국 초기의 기록을 그대로 담고 있어 매우 이채롭다. 용인 할
미성 설화를 백제 건국 초기의 역사와 비교하면 매우 흥미로운 사실이 발견된다. 용인군지에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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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된 할미성대동제 의 ‘할미성 설화’는 다음과 같다.
「옛날 아주 옛날에 슬하에 남매를 둔 노부부가 있었다. 노부부는 아홉 해나 가뭄이 들어 슬하
의 자식 한 명을 죽여야 하는 형편에 놓였다. 이에 노부부는 아들과 딸을 불러놓고 내기를 걸었
다. 하룻밤 사이에 아들은 성을 쌓고 딸은 나막신을 신고 한양을 다녀오는 내기였다. 그리고 내
기에 지는 사람의 목을 베기로 하였다.
노부부는 내심 아들보다는 딸이 내기에 져서 죽기를 바라면서 아들을 도와 성을 쌓기 시작하였
다. 아들이 남쪽에서 성을 쌓기 시작하자 할머니는 북쪽에서 성을 쌓았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딸
이 돌아오는 길목을 지키면서 초조한 마음에 흙을 한 줌씩 쥐었다 놓았다. 할아버지가 쥐었다 놓
은 흙이 산봉우리가 되어 아흔아홉 봉우리가 될 때 동쪽에 해가 떠오르고 딸이 돌아와 버렸다.
이때 할머니는 북쪽의 성을 다 쌓았으나 아들은 남쪽의 성을 다 못 쌓았기에 성은 두 개의 성
으로 남고 말았다. 그래서 노부부는 내기에 진 아들을 죽이게 되었다.
아들의 목을 베자 천둥번개가 치며 9년 가뭄 해소의 장마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 와중에 할
아버지와 딸도 벼락을 맞아 죽었다. 한꺼번에 아들과 딸과 할아버지를 잃고 혼자 남아 애통하게
살던 할머니는 죽은 후에 산신이 되었다. 용인의 진산인 석성산(石城山) 수호신이 되어 용인지
역의 상산 신령이 되었다.」
60) 마성IC,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마성리.
61) 할미성대동제, 용인문화원 홈페이지, 2015.
광개토왕비문에 등장하는 모수성은 독산성일까? 1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