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44 - 오산문화총서 8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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巳(太安萬侶의 墓誌, 養老7年은 723年)
여기의 ‘以癸亥年七月六日卒之’에 나오는 ‘之’는 자동사 ‘卒’ 뒤에 쓰였으니 목적어로 볼 수 없
고 문장의 종결형의 표시로 보아야 할 것이라고 하였다. 17)
廣開土大王碑文은 고구려의 대표적인 한문인데도 이두적인 요소가 나타나고 있어 이 시대의
文章意識에 이두적인 요소가 강하게 작용하고 있었음을 볼 수 있다. 이것이 신라뿐만 아니라 일
본에까지도 전파된 것이니 당시 동아세아의 문화가 확산된 양상을 더듬어 볼 수 있게 하여 주는
것으로 생각된다.
中原高句麗碑文에도 이러한 이두적인 요소들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어 우리의 眼目을 새롭게
하여 주는 바가 있다.」
위의 논문에 근거하여 필자는 광개토왕비문에 쓰인 ‘奄利帶水(엄니대수)’, ‘忽本(홀본)’ 등을 이
두적(吏讀的)인 요소로 본다.
2. 광개토왕비문의 이두적 요소
1) 奄利帶水(엄니대수)
광개토왕비문에는 우리말이 살아있다. 예를 들면 ‘엄니대수(奄利帶水)’와 '홀본(忽本)' 등이다.
필자는 '엄니대수'의 ‘엄니’를 ‘어머니’로 해석한다. 이두적(吏讀的)으로 표기한 우리말로 본다.
다음은 광개토왕비문 제1면 1열과 2열의 기록이다.
1 鄒牟王奉母命駕
2 巡車南下路由夫餘奄利大水…
추모왕께서 어머니의 명을 받들어 수레를 타고 남쪽으로 향하는 길에 부여의 엄니대수를 건너
게 되었다.
17) 小川環樹(1980), 稻荷山 古墳의 鐵劍銘과 太安萬侶의 墓誌의 漢文에 있어서의 Koreanism에 대하여, 「京都産業大學 國際言語
科學硏究所 所報」 1.3.
142 임종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