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6 - 오산문화 7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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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문화








           자의 장소 설명도 다 부질없다. 그냥 아무 생각이 없고 괴로울                    에서 보는 것 같았다. 선명치가 않다.
           뿐이다. 이 정도로 저산소증이 무서운지 몰랐다.

           얼마쯤 지났을까? 갑자기 눈이 부시다. 저만치에서 아주 빨간                     다시 나는 하산해야 한다.
           빛이 올라오는데 눈을 뜰 수가 없다. 그 빛은 아주 뜨겁게 느                    그러나 걸어내려가야 하는데 도저히
           껴진다. 일출인 것이다.                                         움직일 수가 없다. 함께 했던 셀퍼 1명

           이 일출 장면도 정신이 없어 제대로 그 장관을 감상할 수가 없                    으로는 부족해서 인솔자 셀퍼까지 동
           다. 이곳이 길만스포인트(5,685m)이다. 저 아래 흰 절벽이 보                 원하여 부축받으며 내려오는데, 밤엔
           이는데 이제 한 발자국도 뗄 수가 없다.                                몰랐었는데 화산지역이라 발이 반은
           난감하다. 졸리기까지 하다. 아! 이대로 자고 싶다. 조그만 돌                   푹푹 빠지고 거의 셀퍼 두 사람에게
           부리에 앉아 졸고 있었나보다, 한국인 인솔자 윤인혁씨가 다가                     끌려 내려오다시피 하며 내려왔다.

           와 일으켜 세운다. 그러더니 내 가슴을 치면서 자기를 쳐다보                     한 발 한 발 옮기기가 천근만근이었고
           라 한다.                                                 졸음이 자꾸 와서 걸을 수가 없었다.
           “조금만 힘을 내세요.”                                         “휴, 이렇게 힘든 이곳을 왜? 사람들은

           “앞으로 210m만 가면 됩니다. 정상이 바로 코앞이에요.”                     오는지...”
           그러나 나는 도저히 다리가 풀려서 일어설 수도 없었다.                        난, 혼자 이런 생각을 하기까지 했다.
           “일어나서 걸어보세요.” 인솔자는 다그친다.                              후회가 밀려오고 투덜대며 횡설수설할
           흰 눈 사이로 난 길에 한쪽은 낭떠러지 같은 곳 그 밑에 만년                    정도였다. 반 미친 사람이 되어 내려오
           설인 빙하가 펼쳐져 있다고 한다. 나는 술에 취한 듯 꿈에서                     긴 했는데, 저만치 앞에 집사람이 걱정

           보는 듯 눈에는 어떤 것도 들어오지도 않았다. 앉을 자리만 있                    스럽게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으면 앉아서 쉬고 졸고 이러기를 반복했다.                               키보산장에 도착한 후 조금 휴식을 취
           정상을 향하여 남은 200m를 이동하는데, 나는 숫자도 헤아                     하면 괜찮겠지. 하고 침상에 누웠는데

           리지를 못하고 움직이고 있는데, 친구 중 한 명은 돌부리에 걸                    도 도저히 몸을 움직일 수가 없다. 인
           터앉더니 이제는 더 이상 못 간단다.                                  솔자에게 움직일 수가 없으니 손수레
           “친구야 가자! 다 왔단다.”                                      를 불러 달라고 부탁하니 안된단다. 길
           나는 다시 한번 다그쳤다.                                        이 험해서 허리를 다칠 염려도 있고 위
           이렇게 100m만 더 가면 정상이라고 잡아끌어도 보았지만, 친                    험하니 가장 좋은 방법은 빨리 아래

           구는 더 이상은 못 간다고 정상 100m 앞에서 포기하고 내려                    쪽으로 걸어 내려가는 것이 지금으로
           갔다.                                                   서는 가장 좋은 치료 방법이라고 하며
           나는 죽기 살기로 우후르피크(5,895m)에 도착해 먼저 도착한                   내려가자 한다.

           일행들과 사진도 찍고, 정신 차려 주위를 살펴보았지만, 꿈속                     당초에는 키보산장에서 호룸보산장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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