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70 - 오산학 연구 6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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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개나 장군전을 발사하는데 사거리는 800보였다. 독산성전투에서도 이러한 총통들이 사용

               되었을 것이다.


               대완구, 중완구, 소완구



                둥근 돌이나 비격진천뢰를 발사하는 무기이다. 장전할 때 화약의 량은 대완구 30냥, 중완구

               13냥, 소완구 8냥인데 사정거리는 모두 500보 내외였다. 총신이 짧고 운반하기 좋도록 손잡이
               가 달려있다. 성을 방어하는데 유용한 무기이기 때문에 독산성전투에서도 활용했을 것으로 짐
               작된다.



               신기전, 화차



                고려시대에 개발된 주화(走火)라는 화기를 세종 때 발전시킨 것이다. 세종 때의 화기 성능은
               고려시대에 비해 두 배 가량 개선되었는데, 이처럼 우수한 화포제작 기술은 임란까지 이어졌다.
               발화통을 부착한 대신기전은 길이가 156cm의 대형 로켓이다. 수레 위에 100개의 중신기전이

               장착된 신기전기, 혹은 사전총통 50개 총통기 등을 설치하고 수레의 앞과 옆에 칼과 창을 꽂을
               수 있도록 제작했다. 발사는 총통이나 신기전의 심지에 불을 붙이면 화살이 연속으로 발사되었

               다. 신기전이나 화차는 평상시에 물건을 운반하는 수레로도 활용되었다. 1593년 2월 행주산성
               전투에서 화차 300량을 사용하여 왜군 3만 명을 격퇴하는데 큰 전과를 거두었다. 변이중이 제
               작한 이 화차는 승자총통 50전이 장착된 것이다. 행주산성전투에서 처음 사용된 것처럼 알려져

               있지만 독산성전투에서 화차를 먼저 사용했을 가능성도 적지 않다.





               방패



                방패는 적이 쏘는 화살이나 총탄, 적이 찌르거나 내려치는 창과 칼, 적이 던지는 돌을 막으며
               때로는 성벽을 기어오르는 적을 방패 끝으로 내리칠 수도 있다. 태종 때부터 원방패와 장방패
               두 가지를 사용했다. 『세종실록』에 따르면, 재료는 소나무를 깎아 바깥에 괴수의 머리를 그린 생

               가죽을 씌우고 안쪽에는 천을 씌웠으며 테두리에는 철띠를 둘렀다. 원방패의 크기는 직경 3척
               (63cm), 두께 7푼(1.5cm), 무게 2.55 kg이다. 원방패와 같은 방식으로 만들었던 장방패는 길고




               168  김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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