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72 - 오산학 연구 6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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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관찰사 겸 순찰사 권율이 행주에서 왜적을 대파하고, 고산현감 신경희를 보내어 승첩을 아뢰었
                   다. 상이 신경희에게 묻기를, “적의 숫자는 얼마인가?”하니, 대답하기를, “3만에 불과하였습니다.”하였

                   다. 상이 이르기를, “이른바 성산(城山)이란 곳은 지세가 싸움터로서 합당한가?”하니, 대답하기를, “일면
                   은 강가이고, 삼면은 구릉으로 되어 있습니다.”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그곳에 성이 있는가?”하니, 대답
                   하기를, “먼저 녹각(鹿角)을 설치한 뒤에 토석성을 쌓았습니다.”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적은 기병이던
                   가, 보병이던가?”하니, 대답하기를,
                   “기병과 보병이 서로 섞였습니다. 11일에 정탐군을 보냈는데 무악재에서 적을 만나 해를 당한 자가 8〜
                   9명이나 됩니다. 그날 적 2개 진이 성산에 나와 진을 쳤는데 한 진의 수효는 거의 5〜6백 명에 이르렀습
                   니다. 이튿날 적이 들판을 뒤덮으며 나왔는데 그 숫자를 알 수 없었습니다.”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성
                   위에서 무엇으로 방어했는가?”하니, 경희가 아뢰기를, “창이나 칼로 찌르기도 하고 돌을 던지기도 하였
                   으며 혹은 화살을 난사하기도 했는데, 성중에서 와전되기를 ‘적이 이미 성 위에 올라왔다.’고 하자 성중

                   의 군졸이 장차 무너질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권율이 몸소 시석(矢石)을 무릅쓰고 명령을 듣지
                   않는 자 몇 명을 베고 독전하기를 마지않으니, 적군이 진격해 왔다 물러갔다 하기를 8〜9차례나 하였습
                   니다.”하였다.


                이 기록에서 눈여겨볼 것은 싸움의 도구로 돌[石)이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독산성전투에서도

               돌을 사용했던 것은 틀림이 없다. 전투에서 돌을 사용한 것은 놀이로 전해진 ‘석전(石戰)’의 전통
               과 관련되어 있다. 석전놀이는 두 패로 나누어 돌을 던져 승부를 가르는 놀이인데 그 역사가 아
               주 오래되었다. “고구려는 매년 정초에 패수위에 모여 좌우 두 편으로 나누고 서로 돌을 던지며

               싸운다. 이때 국왕이 가마를 타고 와서 석전을 구경한다.” 『수서』 고구려전의 기록이다. 고려시
               대에는 나라에서 석전을 담당하는 석투반과 석투군을 설치해 이를 장려했다. 석전은 고려에서

               조선으로 이어졌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석전을 몹시 좋아한 태종이 세종과 관람하길 원했
               으나 세종이 사양하자 태종은 “석전이 재미삼아 하는 놀이가 아니라 군사 기술”이라면서 세종을
               설득하여 함께 석전을 관람했다는 기록이 있다. 『세종실록』 세종 3년(1421) 5월 5일자에 석전에

               대한 흥미로운 기록이 있다. 좀 길지만 조선시대에 석전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가장 상세하게 알
               려주는 글이다.



                   상왕(태종)이 종루에 나아가 각(角)을 불게 하니, 군사들이 즉시 달려와서 영대로 진을 쳤다. …임금(세
                   종)이 군문에 들어가서 상왕과 함께 종루에서 석전을 보았다. 상왕이 친히 이원·조연·이화영에게 명
                   하여 삼군(三軍)의 장수로 삼아 직문기를 내려 주었다. 군사들이 이미 영을 듣고는 감히 항오를 이탈하
                   여 문란한 행동을 하는 자가 없었다. 조금 후에 계엄을 해제하도록 명하고, 인하여 석전을 보는데, 척
                   석군을 좌우대로 나누고, 잘 싸우는 자를 모집하여 이에 충당하였다. 좌군은 백기를 세우고, 우군은 청




               170  김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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