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68 - 오산학 연구 6집
P. 168

Ⅳ. 독산성에서 조선군이 사용한 무기





               활



                궁술은 말타기와 함께 조선 무사의 기본이다. 궁술의 기본은 세 가지 방식을 함께 수련했는데

               달려가면서 활을 쏘는 보사(步射)와 말을 달리며 과녁을 쏘는 기사(騎射), 그리고 서서 쏘는 입
               사(立射)이다. 임란 때까지 무과 과목은 목전(木箭), 철전(鐵箭), 편전(片箭), 기사(騎射), 기창
               (騎槍), 격구(擊毬) 여섯 가지였다. 이후 기사는 기추(騎芻)로 바뀌고 조총과 유엽전이 추가되었

               다. 목전은 정확하게 쏘기를, 철전은 멀리 쏘기를, 편전은 멀리 정확하게 쏘기를, 기사는 빠르
               고 정확하게 쏘기를 평가하는 것이었다. 관혁은 장전으로 150보(180m) 떨어진 거리에 세워진
               짐승 가죽으로 만든 표적을 쏘아 맞추는 것으로 사냥의 전통에서 비롯된 활쏘기였다. 조선의 일

               반적 활쏘기는 빠르고 멀리 정확하게 쏘는 것이다. 이 세 가지를 충족하는 활쏘기는 관혁이다.
               무사의 능력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말을 타고 빠르게 달리면서 좌우의 과녁을 쏘는 기사를
               첫째로 쳤다. 전투에서 가장 강력한 위력을 발휘한 것은 편전이다. 편전은 화살의 길이가 8촌

               (25cm)에 불과해 ‘애기살’이라 불리기도 했다. 편전은 화살이 짧고 무게가 가벼워 가속도가 커
               서 관통력이 강하고, 사거리가 1천보(1200m) 이상 되었던 강력한 화살이라 사용법도 까다로웠

               다. 4군6진을 설치해 북방을 개척했던 세종은 여진족들이 편전의 사용법을 알지 못하도록 함경
               도 지방에서는 드러내 놓고 편전으로 훈련하지 못하게 지시하기도 했다. 길이가 짧은 편전은 활
               의 시위에 얹어 쏠 수가 없었기 때문에 갈라진 대롱처럼 생긴 통아를 이용해 쏘았기 때문에 일

               반 활쏘기보다 시간이 더 걸렸다. 무과 시험과목의 하나였던 편전은 130보 떨어진 표적을 맞추
               면 15점, 과녁을 맞추면 10점을 주었다. 임란 이후 편전은 일본의 조총과 비교될 정도로 왜군들

               도 두려워했던 조선만의 특별한 병기였다. 앞에서 보았듯이 무인은 활을 쏘면서 세 가지를 충족
               시켜야 했다. 그것은 멀리, 정확하게, 빠르게 쏘는 것이다. 조총이 도입된 이후에도 장교 이상
               의 무사들이 활을 사용했던 것은 활의 발사 속도가 조총을 압도했기 때문이다. 편전을 포함한

               활은 독산성 전투에서도 가장 많이 사용했을 대표적인 무기이다.
                적이 나타날 장소에 표적을 세워두고 활을 쏘아 맞추고 다시 화살을 수거해 오도록 했다. 화
               살을 수거하기 좋도록 나무판 과녁에 쏘는 것이 아니라 짚으로 만든 멍석이나 커다란 천에 쏘

               았는데 이를 ‘솔포’라 불렀다. 병사들이 주변 지형을 익히는 일도 전투가 없는 날의 필수 과제였
               다.




               166  김영호
   163   164   165   166   167   168   169   170   171   172   1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