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6 - 오산학 연구 6집
P. 126
<그림 1> 화성궐리사에 보관되어 있는 성적도 목판 <그림 2> 성적도 목판 인쇄물
3. 오산금암리지석묘군, 오산외삼미동고인돌
고인돌은 돌을 이용하여 만든 구조물로 청동기시대의 대표적 유물이다. 지배자의 무덤이며
묘표석, 제단 등의 여러 기능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남아있는 고인돌을 살펴보면 주
변이 일정한 평원을 접하고 있어서 당시의 사람들이 살기에 적당한 환경이었음을 짐작하게 한
다. 고인돌의 규모는 작은 것에서부터 큰 것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덮개돌의 무게를 보면 강
화 부근리고인돌의 경우 53톤에 이른다. 또한 고인돌은 부족의 단결을 위해 구심점의 역할을
했거나 부족의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 의식을 행하던 곳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19)
현재 경기도에는 700여 기의 고인돌이 남아있으며 강이나 하천 가까이 분포한다. 한강 유역
은 서해안과 가까운 지역에 분포하며 임진강 유역도 강 주변에 자리하고 있다. 안성천 유역의
고인돌로 오산시 외삼미동고인돌, 화성시 병점동 고인돌, 화성시 수기리고인돌을 볼 수 있다. 20)
1) 오산금암리지석묘군
금암동은 예부터 마을 한가운데 잘생긴 바위가 있어 ‘금바위’ 또는 ‘묘바위’ 라 불린 곳으로, 이
것을 한자로 ‘금암’이라 표기하여 금암동이라 명명하였다. 1988년 2월 화성군지 편찬을 위해 자
료 탐문을 하던 화성문화원에서 이곳에 큰 바위가 많다는 주민의 제보를 받아 현지답사를 하고,
19) 우장문, 2006, 『경기지역의 고인돌 연구』, 학연문화사, p.323.
20) 남경식, 2013, 『오산시의 역사와 문화』, 오산문화원, p.23.
124 신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