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5 - 오산학 연구 6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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綠江)을 건너 여기까지 오느라고 배가 고파 허기졌소, 아산 땅에 오느라고 배가 고파 쓰러졌소,
먹을 것이 있거들랑 먹을 것을 좀 주시오, 술도 좋고 밥도 좋소, 곡식일랑 담아 주소.”라는 구절
이다.
아산만에 들어선 국제무역항 평택항은 대중국무역의 전초기지이다. 이곳에 고려시대의 조창
하양창과 조선시대의 조창 공진창이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무역선에 싣고 내릴 물자를 실어 나
르는 것은 수레이다. 대외 수출품을 가득 실은 컨테이너를 운반하는 21세기의 수레는 트레일러
다. 삼국시대 이전부터 안성천에 면한 진위현, 차성현, 하팔현과 삽교천에 면한 당진현, 음봉현
은 바다로 나가고 들어오는 해문(海門)이었다는 사실이다.
6) 하팔현(河八縣)
아산만에 들어선 온조 일행은 안성천을 따라 하팔현(평택시)으로 들어섰다. 하팔현에 이르러
먹을 것을 구걸하였다. 평택거북놀이 사설에는 ‘이 거북이가 서해바다를 건너 여기까지 왔다.’고
했다. 평택거북놀이에 소도구로 등장하는 것은 독(禿)과 우물(井)이다. 먼 뱃길에 마실 물과 먹
을 음식이 가장 긴요한 요소이었음을 증거한다.
<도판 19> 아산만 평택항 <도판 20> 독(禿)과 우물(井)
7) 모수성(牟水城)의 독산(禿山)
하팔현을 떠난 온조 일행은 황구지천을 거슬러 모수성(牟水城, 옛 수원)에 이르렀다. 마한 모
수성의 영역은 지금의 수원, 오산, 화성이었다.
오산거북놀이에 담긴 백제 건국 세력의 남하 흔적 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