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8 - 오산학 연구 6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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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둘은 한산이 말갈과 낙랑의 침공을 방어하기에 유리한 지형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셋은 하남
(직산)보다 한산(한산)이 나라를 경영하기 좋은 장소였기 때문이었다. 팔하(八河)보다 한수(漢
水)를 이용한 물류 교통이 유리하였기 때문으로 판단한다.
그러므로 河南은 漢水의 남쪽이 아니다. 한수의 남쪽이라면 그 지명은 漢南이어야 하는 것이
다. 경기도 수원의 고려시대 지명이 漢南이었다는 사실에 근거한다. 또 신경준이 쓴 『산경표』에
도 남한산은 한남지맥(漢南支脈), 북한산은 한북지맥(漢北支脈)에 속한다. 그러므로 하남 위례
성은 지금의 경기도 하남시가 아니다.
그렇다면 온조왕이 세운 백제의 초도 하남 위례성은 어디인가? 앞 장에서 언급한 대로 하팔
현(河八縣)의 남쪽이다. 경기도 평택시의 남쪽인 충청남도 직산읍이 하남 위례성이다.
천안시 북구 입장면에 위례산과 위례산성이 존재한다. 백제 온조왕이 비상사태에 거주하던
산성으로 판단된다. 산성 내에 온조우물로 불리는 연못과 하늘에 제례를 올리던 흔적으로 추정
되는 팔각천단의 석축이 뚜렷하다. 고구려의 초도였던 홀본 오녀산성과 동일한 구조의 산성과
우물이다. 백제 건국 초기 말갈과 낙랑의 침입에 대피하던 산성으로 판단된다. 하남(직산) 위례
성과 한산(한산) 위례성의 위치 비정의 문제는 학계의 재논의가 필요한 대목이다.
<도판 25> 온조우물 <도판 26> 온조왕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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