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0 - 오산학 연구 6집
P. 110

河糧倉이었다. 지금도 안성천 북쪽 지역의 보통명사는 河北이다. 그러므로 안성천 남쪽 지역의

               보통명사는 河南이었다고 정리한다. 백제의 社稷을 가리키는 稷山 군서리가 하남 위례성이었다
               고 정리한다.
                慰禮城의 위례는 ‘하늘을 위로하여 제례하는’, ‘산상(山上, 위에)에 위치하는’의 의미로 해석해

               야 한다. 백제의 2차 도읍지인 漢山 위례성은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이었다고 판단한다.



               4. 거북놀이의 발생 유래


                경기도와 충청도에 전승하는 거북놀이는 고구려 세력의 남하에서 유래하였다. 비류와 온조,

               소서노 일가의 발자취에서 비롯되었다고 정리한다.
                국명 百濟는 百家濟海에서 왔다고 판단한다. 압록강을 따라 서해를 건너 아산만에 상륙한 1百
               家의 규모는 얼마쯤이었을까? 일가의 인원을 10~20명으로 보아 1000~2000의 수효가 아니었

               을까?
                거북놀이의 발생 유래, 河南 위례성, 漢山 위례성의 위치 비정에 학계의 재고를 바란다.










































               108  임종삼
   105   106   107   108   109   110   111   112   113   114   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