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0 - 오산학 연구 6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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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영 은 용인 석성산 할미성을 백제 마수성에 비정하였다. 산성의 형태가 말머리를 닮았다
는 한양대 발굴조사팀의 발굴 결과와 고구려 구성현(駒城縣)의 지명을 잇는 구성면(駒城面), 마
성지(馬城池), 마가지(馬駕池), 마성리(馬城里) 등에 근거하였다.
석성산의 조선시대의 이름은 보개산(寶蓋山)이었다. 석성산 봉우리가 연꽃 봉오리를 닮은 데
서 유래한 이름으로 추정한다. 석성산(보개산)을 백제 병산책(甁山柵)의 甁山으로 보는 까닭이
다. 석성산에 삼국시대의 토석혼축성인 석성산성이 존재한다. 성안에 봉수대터와 건물지가 존
재한다. 현재는 군부대가 위치하여 접근이 금지된다.
4) 독산책과 구천책의 위치
온조왕 11년, “왕은 낙랑의 침공을 대비하여 독산책(禿山柵)과 구천책(狗川柵)을 세웠다.” 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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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왕이 세운 독산책은 경기도 오산시 지곶동에 위치하는 독산성(禿山城) 으로 알려진다. 최초
백제의 토성이었으며 이후 고구려, 신라의 토경으로 바뀌었다. 고려시대에는 몽고군의 침입에
대응하였으며, 조선시대에는 임진왜란을 극복한 국난극복의 성지였다.
구천책의 구천(狗川)은 경기도 수원시를 관통하는 개천의 이름이다. 본디 구천(狗川)이었으나
정조대왕의 화산릉 행차가 지나면서 황구지천(皇口之川)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구천(狗川)의 상류인 수원시 고색동에 오래된 토성이 존재한다. 이 동(洞)의 이름이 고색동(古
塞洞)인 바, 고색(古塞)은 ‘오래된(古) 요새(要塞)’를 지칭한다. 중국 고사 새옹지마(塞翁之馬)의
의미에 소통한다. 독산책과 구천책은 낙랑과 말갈의 교통을 막았던 해자로 판단된다.
5. 비류와 온조 일행이 남하한 서해 뱃길
1) 대수(帶水)와 패수(浿水)
이병도는 온조 일행이 건넌 帶水를 임진강, 浿水를 예성강으로 보았다. 설명을 덧붙이면 대수
는 한강, 임진강, 예성강이 합류하는 강화도 북부 해안을 의미한다. 삼국시대 임진강 중상류는
칠중하로 불렸다.
29) 이인영,「내 고장 용인 문화유산총람」, 용인문화원, 1997, 115~118쪽.
30) 독산성(禿山城),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98 임종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