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7 - 오산학 연구 6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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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용인 할미산성 설화의 구조
용인 할미산성 설화를 백제 건국의 역사와 비교하면 매우 흥미로운 사실이 발견된다. 할미산
성 설화가 백제 건국의 역사를 그대로 닮고 있다는 점이다.
[표 2] 백제 건국의 역사와 용인 할미산성 설화의 구조
내용 할미성(老姑城) 설화(소서노의 입장) 백제 건국의 역사(비류와 온조의 입장)
가뭄으로 겪은 9년간의 어려움 고구려를 떠나 도읍을 세우기까지 겪은 9년간의 어려움
발단 비류와 온조는 의견 차이로 따라온 백성을 나누어
두 성을 서로 이어 쌓지 못한 아쉬움
미추홀과 위례성으로 갈림
나이 어린 온조는 어머니 소서노의 도움으로 하남
성 쌓는 내기의 결과에 따라 살고 죽는 위례성에 도읍을 세움
아들과 딸 나이 많은 비류는 해빈 미추홀에 도읍을 세우려다
전개 실패함
아들이 쌓은 남쪽의 허술한 책(柵)과 도읍 하남 위례성의 북쪽에 병산책(甁山柵)을 쌓고
어미가 쌓은 북쪽의 튼튼한 성(城) 마수성(馬首城)을 세워 낙랑과 말갈의 교통을 막음
온조왕은 한산(漢山)에 책(柵)을 세우고 위례성의
아들의 목을 베자 천둥번개가 치며 9년
민호(民戶)를 옮김. 국도를 하남(河南)에서
절정 가뭄 해소의 장마가 시작됨 그 와중에
한산(漢山)으로 옮김. 강서북에 축성하고 한성(漢城)의
할아버지와 딸도 번개에 맞아 죽음
민호(民戶)를 옮김, 궁실을 세움
애통하게 살던 할머니도
王母 소서노가 5虎에게 시해당함
결말 죽어 성주산(聖住山)의 산신
온조왕은 소서노를 시조모로 모시고 사당(廟)을 세움
마고선인(魔姑仙人)이 됨
4. 삼국시대 漢山과 河南의 영역
1) 한산(漢山)과 한수(漢水)
한산(漢山)은 한주(漢州)의 영역이다. 신라구주군현총도(新羅九州郡縣總圖)에 표기된 한주(漢
오산거북놀이에 담긴 백제 건국 세력의 남하 흔적 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