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5 - 오산학 연구 6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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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설의 ‘산 넘고’는 백두산, ‘물 건너’는 압록강을 가리킨다고 판단한다. 오산의 지정학적 위
치가 아산, 직산, 평택과 동일 생활문화권이라는 사실에 근거한다.
그런데 오산거북놀이가 아산·직산·평택거북놀이와 크게 다른 점은 식량 구걸의 행태이다.
24)
저자세의 구걸 태도가 협박 형태의 고자세로 바뀌는 것이다. 오산 금암동거북놀이 의 사설은
다음과 같다.
안마당으로 들어온 거북과 새끼거북이 한바탕 놀고 대청마루에 앉는다. 거북애비가 재미있는 입담으로
집주인과 대화한다. “이 거북이가 먼길을 와서 배가 고프니 먹을 것을 달라.”고 얘기하고 집주인은 “집
안의 우환은 모두 가져가고 복을 많이 주고 가시라.”고 기원한다.(집주인은 거북에게 깍듯이 존댓말을
쓰며 경외심을 들어낸다.) 집주인이 “먹을 것을 내놓겠으니 복을 많이 주고 가시라.”고 말하면 거북애비
가 “집주인이 덕이 많아 좋은 술과 맛있는 음식을 주신다고 하니 이 집에 복이나 털어주고 가자.”라고
말하고 큰 소리로 “덩 더 쿵”하고 외친다. 거북이는 거북이 머리로 대청마루를 큰 소리가 나도록 세게 3
회 두드린다. (이때 거북머리(나무떡메)로 대청마루를 너무 세게 두드려서 대청마루가 깨지기도 했다.)
오산금암동거북놀이의 구걸 태도가 아산·직산·평택거북놀이와 다른 것은 무슨 이유일까?
저자세의 구걸 형태가 고자세의 협박 형태로 돌변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오산시의 독산
이 곡식을 비축하던 창고였음에 근거한다고 판단된다.
오산시의 독산(禿山)은 간장독, 된장독, 김칫독, 술독, 쌀독의 독산이다. 독산이 쌀을 보관하
던 사창(社倉)이었다는 것은 용주사의 말사 보적사의 연혁에 근거한다. 또 임진왜란 당시 권율
장군이 군마에 쌀을 끼얹어 왜군의 침공을 물리쳤던 세마병법(洗馬兵法)에 근거한다. 독산에 많
은 곡식이 비축되었으므로 비류와 온조 일행은 더 많은 곡식을 얻으려고 떡메로 협박하였던 것
으로 판단한다.
2. 연가부구(連葭浮龜)와 현무(玄武)
1) 광개토왕비문의 연가부구(連葭浮龜)
25)
連葭浮龜는 광개토왕비문 제1면 1~3행에 등장한다. “시조 추모왕이 남부여의 엄리대수(奄
24) 오산 금암동거북놀이, 오산학연구 제1집, 오산향토문화연구소, 한민규, 2015. 217쪽.
25) 광개토왕비 쌍구가묵본(雙鉤加墨本), 酒勾景信,1909년.
오산거북놀이에 담긴 백제 건국 세력의 남하 흔적 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