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4 - 오산문화총서 7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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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충양공김준룡전승비의 기록
광교산 종루봉(비로봉) 남쪽 암벽에 새긴 김준룡 장군 전승비가 있다. 이 비는 화성 축성의 책
임자였던 번암 채제공이 세운 것이라고 전한다. 화성 축조에 필요한 돌을 채취하러 갔던 석수들
의 이야기를 듣고, 정조에게 그 사실을 보고하여 이룩된 것이다. 충양공김준룡전승비는 장군의
승리를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忠襄公金俊龍戰勝地, 丙子淸亂公提湖南兵, 勤王至此殺淸三大將
충양공 김준룡의 전승지다. 병자년 청의 난리에 공께서 호남병을 이끌었다. 왕에게 충성을 다
하고자 이곳에 이르러 청의 대장 셋을 사살하였다.
위의 기록에서 殺淸三大將의 정체는 청의 백전노장 揚古利(양고리)와 몽골 장수 孔有德(공유
덕)과 耿仲明(경중명)에 비정된다.
3. 대동야승의 기록
25)
『대동야승(大東野乘)』 은 1637년 1월 6일의 날씨를 기록한다. 또 지명 廣敎(광교)와 末川(말
천)을 기록한다. 다음은 인조 15년에 벌어진 광교산 전투의 기록이다.
6일 비와 눈이 섞여서 내려 종일토록 어두웠다. 진시(辰時)에 광교(廣敎) 진중의 정탐병이 말
천(末川)에서 와서 적병이 많이 온다고 보고하니, 병사(兵使)는 급히 군사를 정돈하여 변을 대비
하게 하였다.
이윽고 적병 5·60기가 말을 달려 진(陳) 밖에 당도하여 형세를 두루 살펴보고 횡행하며 무기
를 번득이더니 큰 군사가 뒤를 이어 산과 들판을 뒤덮으며 돌격하여 나와 먼저 전영(前營)의 머
리와 좌영(左營)의 꼬리를 침범하였는데, 진 밖에다 방패를 줄지어 세워 놓고 호준포(虎蹲砲)를
연달아 쏘아 대니 시석(矢石)이 비같이 쏟아졌다. 그러나 아군의 진중은 동요하지 않고 시각이
넘도록 격전을 벌였다.
25) 대동야승(大東野乘), 속잡록4(續雜錄四) 정축년 상 숭정 10년, 인조 15년(163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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