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2 - 오산문화총서 7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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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청실록 태종 문황제의 기록
丁未朝鮮全羅忠清兩道巡撫總兵合兵來援立營於南漢山城
上聞之遣和碩豫親王多鐸超品公額駙楊古利率兵相機迎戰多。鐸楊古利等奉命往視值天雪陰晦。不
見敵營遂縱兵進擊敗其山下列陣兵追至山頂敵營多鐸鳴角集兵招楊古利登山督戰楊古利往會適有
一朝鮮敗卒伏於石窟暗以鳥鎗擊中楊古利創重而卒時年六十有六楊古利凡在行間率先破敵克建奇
勳於國家宣力為多云
정미일(丁未)에, 조선(朝鮮) 전라(全羅) 충청(忠清) 양도(兩道)의 순무(巡撫)와 총병(總兵)이,
합병(合兵)하여 내원(來援)하여 남한산성(南漢山城)에 입영(立營)코자 하였다.
상(上,홍타이지)이 듣고는 화석예친왕(和碩豫親王) 다탁(多鐸), 액부(額駙,사위) 초품공(超品
公) 양고리(楊古利)를 보내 솔병(率兵)하여 상기(相機)하여 영전(迎戰)하게 하였다.
다탁(多鐸)과 양고리(楊古利) 등이 봉명(奉命)하여 왕시(往視)하니, 때마침 눈이 와 하늘이 음
회(陰晦)하여 적영(敵營)을 불견(不見)하였다. 마침내 종병(縱兵)하여 진격(進擊)하여 깨트렸다.
그 산(山) 아래에 열진(列陣)한 병(兵)을 추격(追)하여 산(山) 정상(頂)의 적영(敵營)에 이르렀
다. 다탁(多鐸)이 명각(鳴角)하여 병(兵)을 모으고 양고리(楊古利)를 초(招)하여 등산(登山)하게
하고 독전(督戰)하였는데, 양고리(楊古利)가 산을 오르다 때마침 석굴(石窟)에 매복(伏)한 한 명
의 조선(朝鮮)의 패졸(敗卒)과 조우(適)하였다. 패졸이 은밀히 조창(鳥鎗,조총)으로 양고리(楊古
利)를 격중(擊中,명중) 창중(創重,중상)하여 졸(卒)하니, 이때 나이 66이었다.
양고리(楊古利)는 무릇 솔선(率先)하여 파적(破敵)하고 극(克)함이 행간(行間)에 있었고, 국가
(國家)에 기훈(奇勳)을 세움에 있어 선력(宣力)이 많다 하였다 한다.
2) 청사고 권226의 기록
十二月,太宗親伐朝鮮,揚古利從。
二年正月,師濟漢江,屯江岸,朝鮮全羅、忠清二道兵來援,營漢城南。
是月丁未,太宗命豫親王多鐸及揚古利擊之,值雪,陰晦,敵陣於山下,縱兵進擊,自麓至其
巔,多鐸鳴角,招揚古利登山督戰。揚古利將馳赴,朝鮮敗卒伏崖側,竊發鳥鎗,中揚古利,創
重,遂卒,時年六十六。
明日多鐸率兵逼敵營,朝鮮兵已夜遁,得揚古利尸以歸。
70 임종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