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3 - 오산문화총서 7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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太宗親臨哭奠,賜御用冠服以殯。喪還,太宗迎於郊,命陪葬福陵。葬日,太宗復親奠。
12월(1636년), 태종(太宗)이 친히 조선 정벌에 나섰다. 양고리(揚古利)가 따랐다.
2년(1637년) 정월, 청 태종이 한강을 건너 강기슭(삼전도)에 주둔(屯)하였는데, 조선의 전라도
와 충청도의 근왕병이 한성 남쪽에 진을 쳤다.
이달 정미일(1월 7일)이었다. 태종이 예친왕 다탁과 양고리에게 공격을 명령하였다. 때마침
눈이 내려 날이 흐리고 어두웠다. 적진의 산 아래서 진격하여 산꼭대기에 이르렀다.
다탁이 각(角,螺角)을 불어 양고리의 등산(登山)을 독전하였다. 양고리가 말을 달려 추
격하여 오를 때, 패주하던 조선병이 암벽(崖側)에 매복하였다가 조창(조총)을 쏘니 양
고리에게 명중되었다. 상처가 깊어 이로 인해 죽었다. 이때 양고리의 나이 66세였다.
다음 날, 다탁이 다시 군대를 이끌고 공격하였으나 조선병은 지난 밤에 이미 퇴각하였으므로 양
고리의 시신을 수습하여 귀환하였다.
태종이 친히 제물을 올려 곡하고, 황제의 황룡포를 덮어 염(殯)하였다. 상여가 돌아오자, 태
종이 교외까지 친히 나가 맞았고 복릉(福陵-태조 누르하치) 옆에 안장하였다. 장삿날에 태종이
친히 전(奠,술과 과일)을 올려 제사하였다.
위의 청실록과 청사고가 기록한 石窟 또는 崖側은 어디일까? 그 장소를 두 군데로 비정할 수
있었다. 하나는 광교산 시루봉 동남쪽 오초사 부근의 暗窟이다. 다른 하나는 忠襄公金俊龍戰勝
碑가 새겨진 바위다.
도-7 광교산 겨울 풍경 (1637년 1월 6일과 흡사한 날씨)
광교산전투, 김준룡장군 전승지 답사기 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