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7 - 오산문화총서 7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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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천에 진을 치고 야영하던 충청근왕병은 청군 기마병의 출현에 놀랐다. 기마병의 갑작스런

                출현에 당황한 충청감사 정세규가 충청 근왕병을 뒤로 물렸다. 그러나 군사를 뒤로 물리는 충청
                                                              18)
                감사 정세규의 전략은 오판이었다. 청군 사령관 예친왕  다탁(多鐸,DoDo)이 기회를 놓치지 않
                았다. 맹장 양고리 및 자신의 조카 ‘쇼토’, ‘니칸’, ‘보호토’, ‘로토’, ‘낙추’ 등을 출격시켰다. 청군

                이 자랑하는 팔기군으로 충청근왕병을 습격하였다.
                 청군은 이미 전투 경험이 많은 날랜 기병이었다. 명과 치른 크고 작은 전투에서 승리한 백전

                노장들이었다. 이에 비해 보병으로 편성된 충청근왕병은 전투 경험이 전혀 없는 속오군이었다.
                 충청감사 정세규 또한 병법을 익힌 무신이 아니었다. 사서삼경의 글공부로 관료가 된 문신이
                었다. 지휘관과 병졸들 모두 전투의 경험이 없는 오합지졸이었다.

                 청군의 기습 공격에 당황한 충청근왕병은 뿔뿔이 흩어졌다. 적을 상대하여 전투를 벌이기보
                다는 도망치기에 바빴다. 전의를 상실하여 대거 후퇴하였으나 청군의 발 빠른 기병에 붙잡혀 수
                천 명이 사살되었다. 겨울 안개 속에서 청군의 습격을 받은 정세규의 충청근왕병은 조총 한번,

                활 한번 제대로 못 쏘고 패퇴하였다. 대부분 농민과 노비들로 충원된 충청근왕병의 전투력은 형
                편없었다.
                                               19)
                 공주 영장(營將) 최진립이 북두라미 (죽전휴게소)에서 분전하다 전사하였다. 의병장 이민진
                                                                 20)
                과 김홍익 등은 퇴각하는 근왕병에 밀쳐져 이진산(夷鎭山) 의 절벽에서 낙사했다. 보령 무장
                            21)
                인발은 풍덕천 을 해자로 삼고 분전하다 독성산성으로 후퇴하였다.
                 죽산산성에서 충청감사 정세규를 도우러 달려오던 충청병사 이의배 또한 패전했다. 용인 구
                성에서 청의 장수 쇼토 등과 조우하여 전투를 벌였으나 패배했다. 이의배는 용인 구성의 할미산
                성으로 퇴각하여 전열을 재정비했다.

                 충청근왕군의 총수 정세규는 승산이 없다고 판단하여 이진산의 절벽에서 몸을 던졌다. 그러
                나 부하 군사들에게 구출되어 수원(現 오산 독성산성)으로 퇴각하였다.

                 험천전투의 피해가 막심하였다. 충청근왕군은 3천여 명의 사상자를 내고 지리멸렬하였다. 충
                청근왕병의 시신이 성남 험천에서 용인 구성의 들길에 발 디딜 틈 없이 널렸었다고 전언한다.
                충청감사 정세규, 충청병사 이의배, 보령 무장 인발의 군사만 겨우 살아남았다. 총사령관 정세

                규가 유리한 지형에 진지를 구축하고 전투를 벌여야 하는 병법을 간과한 탓이었다. 그러나 후



                18) 예친왕(睿親王), 청 태종 황타이지는 자신의 형제 8명에게 예친왕의 작위를 부여하였다. 이들은 팔기군(八旗軍)의 사령관이었다.
                19) 북두라미, 지금의 죽전휴게소 언덕으로 북을 치고 청군을 공격하여 북두라미가 되었다.
                20) 이진산(夷鎭山), 임진왜란 때 왜군의 진지였다. 병자호란 때 조선근왕병의 진지였다. 현재의 이름은 예진산(해발 135.8m)이다.
                21) 풍덕천, 용인시 탄천에 근접한 수지구청의 앞을 흐르는 하천, 현재의 성복천이다.


                                                               광교산전투, 김준룡장군 전승지 답사기   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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