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65 - 오산문화총서 7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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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인구는 12만3천31명으로 농가는 총 호수의 85.5%였는데, 그중 오산(성호면)의 농가는 1천56
호였다. 수원군 전체농업의 경영형태를 보면 83% 이상이 전업농이었으며 소작농은 51.6%로 절
반 이상을 차지하였다. 그중에서도 오산은 소작농 비율이 50.6%로 낮은 편이었다. 또한 오산은
전업농 비율이 73.3%로서 다른 지역보다 현저히 낮은 반면, 겸업농 비율이 수원군 잔체 15.7%
에 비해 26.7%로 월등히 높았다. 이는 수원군 내의 다른 지역과 비교해 지주는 한 명도 없고 자
작농이 적은 원인도 있었겠지만, 다른 내륙 지방보다 교통이 좋았기 때문에 다른 상업 등 다른
업종과 겸업을 했기 때문으로 보여진다. 15)
운암들 농업에 큰 영향을 준 농업용수는 우선 오산천물이 있겠다. 그리고 부산동의 부산동저
수지, 역말의 역말저수지, 동탄의 산척저수지(방교저수지), 장지저수지, 신갈의 기흥저수지 등
이 있다.
운암들 주변의 토양에 대하여 알아보면, 오산동은 오산천변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오산천변
평탄지에 위치하기 때문에 오산천의 영향으로 하성충적토가 가장 넓게 분포하여 운암들의 대부
분을 차지할 186정보에 이르고, 농지는 대부분 논으로 활용되어 왔으나, 근래 들어 진행된 도시
개발로 농지가 급격히 감소하고 있는 상황이다. 대원동 쪽은 오산동과 더불어 많은 농지가 논과
밭으로 활용되어 운암들, 개미들, 대밭들 등의 이름으로 불리어 왔으나 경부고속도로 건설과 오
산나들목이 생기면서 오산에서 가장 먼저 개발이 되기 시작하여 많은 농지가 공장부지와 상가
밀집지역으로 변하였고, 지금은 오산동과 함께 상업, 교통의 중심지가 되었다. 16)
부산동은 오산천 인근에 위치하여 섭들, 방죽들, 문앞들 등 다소 넓은 면적에서 벼농사를 해
온 지역으로, 이 지역도 구릉지에서는 복숭아, 포도 등 과수와 밭농사를 곡간지에서는 벼농사를
해오던 지역이었으나 곡간지와 구릉지 중간에 대규모의 물류단지, 회사연수원, 공장들이 들어
서면서 많은 농지가 사라졌다. 17)
오산엔 오산리에 철도역이 개설되어 있었기 때문에, 철도와 철도역, 신작로 주변으로 작은 시
가지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 이외에는 대부분 농촌부락으로서 집단부락을 이루고 있었는데, 오
산은 이 시기에 이미 상업이 발달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므로 오산은 농업과 상업이 공존하는
경제 상황이었다. 이러한 경제 상황 속에서도 운암들은 벼의 주 생산지로서 오산의 쌀 생산을
대표한다 하겠다.
15) 위의 책 .40쪽
16) 오산시사편찬위원회, 2009, 『오산시사』 2권, 446~447쪽.
17) 위의 책. 452쪽
운암들(운암뜰) 탐구 2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