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63 - 오산문화총서 7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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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오산천 남쪽 둑+(구)1번국도 동쪽+고속국도진입로(IC) 북쪽+고속국도 서쪽:
이 범위의 (구)1번국도는 최소 일제강점기부터 도로 양편으로 주택과 상가로 형성되어 오산
대교부터 오산역까지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 구역에서는 주택과 상가가 포함되므로 농토만
들어가 있던 운암들 범위에서는 빠져야 할 것이다.
② 오산천 남쪽 둑+오산오색시장 동쪽+고속국도진입로(IC) 북쪽+고속국도 서쪽:
이 범위의 오산오색시장은 오산오색시장 북쪽 편 일부와 성호초등학교와 일부 관공서가 들어
가 있던 곳을 빼면 오색시장이 형성되기까지는 농토였다. 하지만 현재는 5일장과 상설시장이
함께하는 시장으로 바뀌어졌으며, 과거의 운암들에는 들어갈 수 있겠으나, 현재의 운암들 범위
에서는 빠져야 할 것이다.
③ 오산천 남쪽 둑+경기대로 동쪽+고속국도진입로(IC) 북쪽+고속국도 서쪽:
이 범위의 경기대로는 처음엔 1번국도가 아니었고 산업도로라 불리는 운암들 내에 개설된 도
로였으며, 이후 운암주택단지와 오산시청이 들어선 곳이다. 현재 농토는 아파트와 상가, 관공서
로 반 이상이 개발되어 소멸됐고, 나머지 영역도 곧 개발로 사라질 예정이다. 현재 오산시민들
의 운암들 범위 인식에 거의 모두가 동의하는 범위이다.
3. 운암들의 주 생산물
1789년(정조13) 당시 오산지역의 주 산업은 농업이었다. 오산시에 속해 있던 지역인 초평면,
청호면, 시봉면, 삼미면, 산성면 등의 지역에 있던 총 호수는 1천387호에 인구는 4천938명으로
호당 인구 3, 4명으로 이 지역에 많은 사람이 모여 살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수원과 오산지역
이 경기도에서는 강화도호부 다음으로 인구가 많았다고 한다. 그만큼 오산지역에서 농업도 성
행하였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9)
운암들은 오산지역에서도 대표적인 벼농사 재배지역으로 단일 경작지로는 가장 넓은 곳이다.
이곳의 주 생산물은 쌀이다. 또, 운암들지역 주변으로 많은 인구가 다른 지역보다 밀집하여 살
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 당시에는 주 산업이 농업이었기 때문에 농토가 넓은 곳에 사람이 많
이 모여 살 수밖에 없을 것이다.
9) 오산시사편찬위원회, 2020, 『오산시사』 5권, 29쪽
운암들(운암뜰) 탐구 2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