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09 - 오산문화총서 7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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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대보름날 <달맞이>는 뒷동산의 굴바위에서 했으며 이날 <쥐불놀이>도 함께 행하여졌다.
<호미걸이>는 김을 다매고 나서 두레패를 앞세우고 그간 농사일로 힘들었던 것을 서로 위로
하면서 놀이판을 펼쳤다고 한다.
그리고 <거북놀이>는 팔월 추석에 하였는데, 수수깡 잎으로 어른 거북 큰 것 하나와 새끼 거
북 작은 것 하나를 만들어 두 마리의 거북이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술과 음식을 얻어먹었다. 이
때 거북을 끌고 다니는 일명 마부는 북하고 장구를 치면서 집집마다 축원을 해주었다.
14. 세교동
세교동에서는 홍촌말인 큰말과 원촌말인 건너말, 최촌말인 오리골에서 각각 민요와 놀이가
조사되었다.
큰말의 <줄다리기>는 큰말 안에서 아랫뜸 웃뜸의 남자와 여자가 편을 나누어서 줄다리기를
하였다. 홍촌말 안에서도 두 개의 마을이 존재하였는데 두 마을의 남자들이 한 팀이 되고 두 마
을의 여자들이 한 팀이 되어 <줄다리기>를 펼쳤다는 점이 흥미롭다. 그런데 일반적인 <줄다리
기>의 승패 방식과는 달리 대개 남자편이 이기곤 하였다는 점은 더욱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한편 서쪽으로 접하고 있는 지곶동과 서랑동의 <줄다리기>가 유명하였다는 제보도 확보할 수
있었는데 실제로 필자가 답사를 통하여 조사할 결과 이 두 마을의 <줄다리기>가 더욱 큰 규모로
행하여졌던 것으로 파악되었다. 그 근거로 가장동과 서동쪽에서도 구경을 오거나 함께 참여하
였다는 증언을 확보하였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그리고 큰말에서는 마을의 뒷산에 올라 <달맞이>도 하였으며 <쥐불놀이> 또한 행하여졌다.
단오에는 역시 뒷산의 소나무에 그네를 매고 <그네뛰기>를 하였던 것으로 조사되었다. 한편 큰
말에는 두레가 있었으며 모심고, 논매고 할 때까지 장대에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
기를 논둑에 꽂아 놓고 일들 하시고 꽹과리 두드리고 그랬다고 한다.
<거북놀이>는 8월 추석에 수수 잎을 벗겨서 새끼를 꽈서 거북을 엮었다. 집집마다 돌아다니
면서 덕담도 하고 술과 음식을 얻어먹던 놀이었다.
원촌말인 건너말에서는 정월 대보름날 두레패가 집집마다 돌면서 고사반을 하였다. 이것이
건너말의 <두레놀이>였으며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악기들이 훼손되었으며 관리도 잘 되지 않
고 또 도난도 당하여 전승이 끊기게 되었다.
<달맞이>는 지금의 세마역이 있는 곳에서 오산죽미령유엔군초전비로 향하는 산인 사닥다리
산(여치산)에서 하였다. 사닥다리산이란 사다리모양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었다고 한다. 또한
오산시 민요의 전승 양상과 다리세기노래의 특질 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