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12 - 오산문화총서 7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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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 있으면 그 새끼도 밑창에 드러누워 있고 그랬다. 거북은 보통 둘이 들어가게 만들었다. 한명

               이 모가지를 붙잡고 한 명은 몸뚱아리가 되었다. 배고프면 배고픈 흉내도 내고, 뒤에서 흔들고
               그렇게 다녔다.”
                은계동에서는 논맴소리에 대해서는 채록되지 않았지만 이와 관련된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논을 맬 때는 대각선으로 맸다고 한다. 논을 매면서 ‘이천기러기가 오천 역말로 날아가는 것처
               럼 하라.’고 했다. 이천은 경기도 이천이다. 오천은 수원서 이천 가다보면 중간에 오천이 있다.

               충주 장호원이 있고, 이천 장호원이 있다. 냇갈 아래로는 충주 장호원이고 위로는 이천이다.


               18. 외삼미동



                정월대보름에는 <달맞이>도 했지만 주로 횃불놀이를 했다고 한다. 횃불놀이는 또 “망불놀이”
               라고도 하였다. 짚불을 크게 해서 뒷동산에 올라가서 달뜨는 거 보고 소원을 빌었다고 한다. 외

               삼미에서 제보하고 있는 횃불놀이의 횃불이 곧 짚으로 만든 방망이에 불을 붙여 만든 횃불일 것
               이라 판단된다.
                <호미걸이>에 대하여 좀 더 구체적으로 조사되었다. 모를 내고 나면 풀이 많이 났는데 호미를

               가지고 세 번 훔쳐냈다. 한 달 반 동안 훔친 후 일이 끝나면 주인이 다 불러 모아놓고 개를 잡고
               크게 먹였다. 그리고 <호미걸이>를 하는 날은 머슴들까지 완전 새 옷을 사 입혔다.

                외삼미에서는 <복다림>과 <녹음놀이>를 겸하였던 것으로 조사되었다. “ ‘복다리미’라고도 하
               였는데, 요새 말로 하면 개잡아 먹는 건데, 옛날에는 개 잡아 먹는 것이 축제였다. 날을 미리 정
               하고, 마을 사람들이 다 먹는데, 먹는 부위에 따라서 목적이 다 달랐다. 개 족은 젖 먹는 유모의

               젖이 잘 난다고 해서 젖먹이를 데리고 있는 어머니한테 주는 거다. 개머리는 무조건 개를 잡은
               사람한테 줘라.” 이런 의미였다.

                그리고 <거북놀이>는 추석에 하였는데 짚으로 거북이 잔등에다 도랭이(도롱이:짚으로 만든
               비옷)를 씌우고 어른이 데리고 마을마다 돌면서 장구치고 북치고 한바탕 잔치를 벌였다.



               19. 원동(우촌)


                원동의 우촌에서는 <다리세기>놀이와 춘향각시놀이가 채록되었으며, 절골에서는 <이 빠지면

               부르는 노래>가 채록 되었다. 한편 절골에서는 <달맞이>는 마등산에 올라가서 했으며, <돌싸움
               >은 원동의 역말과 부산동의 가마뫼와 했다고 한다. 단오에 <그네뛰기>도 행하였으며 <호미걸




               210  김용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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