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89 - 오산문화총서 7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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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시설인 진남루를 “나그네들이 모이는 곳으로 삼았다.”는 표현은 전쟁의 시름을 잊게 되었

                다는 뜻이다.







                Ⅶ. 독산성에서 과거가 열리다





                 비슷한 시기, 선조는 독산성에서 군사를 위로하는 잔치를 베풀고 무예를 시험하여 부상을 내
                                                                          24)
                리도록 지시한다. 어명을 받은 이를 실행한 사람은 중사(中使) 이봉정 과 주서(注書) 이덕온이
                  25)
                다.  1602년 겨울, 독산성에서 창검 무예를 시험하였다. 이때 익힌 창검무예는 등패, 낭선, 장
                창, 당파, 곤방, 쌍수도 6기였다. 1598년 10월에 『무예제보』가 간행되었으니 독산성에서도 이를

                                                 26)
                교본으로 삼아 무예를 가르쳤을 것이다.  병조에서 독산성에서 평가한 무사들의 시험 성적을
                기록한 문서를 조정에 올렸다. 이를 살펴본 선조가 신하들에게 의견을 구했다. “살수(殺手:창검
                다루는 무사)로서 거수(居首:수석)인 자도 전시에 바로 응시하게 하여 군사들의 사기를 북돋우

                                                                                       27)
                고 싶다. 그러나 살수를 바로 응시케 하는 것이 마땅한 지의 여부를 의논하여 아뢰라.”  선조는
                수석을 차지한 독산성 무사에게 전시에 곧장 응시하도록 명할 정도로 독산성 무사들에게 깊은





                24) 이봉정(李奉貞, ?~?)은 내시지만 선조의 총애를 입어 정3품 당상관 통정대부에 올랐던 특별한 인물이다.
                25)  『선조실록』 1594년 10월 17일, 어명을 받은 이봉정과 주서(注書) 이덕온(李德溫, 1562~1635)은 오산 독산성을 찾아가 군사를
                  위로하는 잔치를 열고, 이어 군대를 사열한 후 무예를 시험하여 우수한 성적을 거둔 무사들에게 상을 내렸다. 같은 해 이봉정
                  은 평안도 도순찰사 이원익이 평안도의 군사를 평양에 모두 모아서 사열을 할 적에도 파견되어 무예시험을 주관하였다. 1601
                  년에는 검열 김유(金瑬:훗날 인조반정의 주역)와 함께 함께 충청도 청주와 홍주에서 시행된 무예시험을 주관하였다. <실록>
                  은 영남과 호남에서도 시재를 주관했던 사실도 알려주고 있다. 대신들도 잘못하면 거침없이 비판하는 사관조차 이봉정을 ‘성
                  품이 강건하고 악을 미워한다’고 평가하였으니 일반적인 내시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르다. 선조의 신임으로 이봉정은 ‘공신록’
                  에도 이름을 올렸다. 한편 이봉정과 함께 독산성을 찾았던 이덕온도 기억해야할 인물이다. 임진왜란 때 이덕온도 선조 임금
                  을 호종하였다. 특히 한양을 버리기 전 선조에게 세자를 책봉하여 민심을 수습하도록 건의하고 세자 광해군을 용강으로 배종
                  한 공으로 호성훈을 받았다. 성주목사를 거쳐 동래부사를 역임하고 승지를 지냈다. 이괄의 난 때 인조를 호종하여 공주까지
                  내려갔으나 반란이 평정되자 병을 핑계로 낙향했다. 저서로 『구촌집(龜村集)』이 있다.
                26)  이후 1610년에 월도와 협도곤, 권법, 왜검술까지 4기를 도보로 정리한 『무예제보번역속집』을 펴냈고, 130년이 지난 1759년에
                  는 대리청정을 하던 사도세자가 18기를 도보로 정리한 『무예신보』를 펴냈다. 다시 30년 뒤에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를 계승
                  하여 18기에 마상기예 6기를 더한 『무예도보통지』를 편찬한다. 이처럼 독산성은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무예도보통지』
                  의 무예24기를 수련한 유서 깊은 현장이다.
                27) 『선조실록』 35년(1602 임인) 12월 7일(갑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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