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87 - 오산문화총서 7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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Ⅴ. 독산성을 새롭게 단장하다





                 1596년 4월에 도체찰사 유성룡이 변후의 후임으로 독성장 조발을 경기방어사로 추천하였

                  20)
                다.  독성장 조발도 역량이 뛰어난 무인이었다. 군사 모집과 군량을 안전하게 운반하고 성을
                잘 지킨 공으로 조발은 1597년 9월에 수원부사에 임명되고 판관까지 겸직했으나 탄핵을 받아

                12월에 물러났다. 이때 비변사가 나서서 조발을 적극 변호하였다. “전 수원부사 조발은 독산성
                을 처음 조처할 때부터 일을 전적으로 관장하였고 본부 판관에서 물러난 뒤에도 수성장의 임무
                를 계속하였습니다. 조방장의 직임을 함께 했으므로 사업의 내용을 잘 알고 있으며 군심(軍心)

                도 잘 따르고 있으니 수성장으로 삼아 조방장의 직임을 함께 맡아 성을 지키도록 하소서.” 선조
                의 승낙을 얻어 이때부터 조발은 조방장 겸 수성장으로 독산성을 관리하고 지키는 임무를 수행
                하였다.

                                           21)
                 1597년에 변양걸(1546~1610) 이 경기우도 방어사에 임명되었다. 이때 변양걸도 변후처럼
                독산성 양산봉에 흙을 쌓아 위를 평평하게 한 뒤에 건물을 세우고 창을 뚫어 산 아래를 내려다
                볼 수 있도록 하였다. 주요 병기와 군사들을 모두 건물 속에 들어가 몸을 안전하게 숨길 수 있도

                록 하고, 성 밖에 목책을 세워 틈 사이로 총과 화살을 쏘도록 시설을 완비한 것이다.
                 정유재란이 일어났을 때 수원, 오산의 백성들이 독산성에 들어가 지키면서 대비한 사실

                도 기록으로 확인된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면서 독산성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무비가
                허술해졌다. 동서로 대립하던 조정은 북과 남으로 갈라져 대립하였다. 인사 정책도 엉망이
                었다. 「수원부사 선생안」을 꼼꼼하게 살펴보면 이처럼 한심한 정황이 그대로 드러난다. 최

                산립(1599.05~1600.11), 권경우(1600.11~1601.01), 박이장(1601.02~1601.09), 성윤문
                (1601.10~1601.11), 심집문(1601.12~1602. 윤2)까지 2년 사이에 부사가 무려 다섯이나 교체되





                20) 『선조실록』 74권, 선조 29년 4월 8일 갑진 1596년
                21)  변응성(邊應星, 1552~1616) 본관은 원주. 자는 기중(機仲). 아버지는 공조판서 겸 도총관 변협이다. 1579년(선조 12) 무과에
                  급제하였고, 강계부사로 재직할 때 부친상을 당해 낙향했으나,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경주부윤에 임명되었다. 그러
                  나 왜군이 먼저 경주를 점령하여 부임하지 못했다. 8월 가평 전투에서 적과 싸워보지도 않고 도망쳤다는 이유로 백의종군하
                  였다. 1593년 2월 도체찰사 유성룡이 그의 죄를 변호하여 경기방어사가 되었다. 이천부사가 되어서는 여주목사 원호(元豪)와
                  협력하여 남한강에서 적을 무찔렀다. 1594년 광주·이천·양주의 산간에 출몰하는 토적을 토벌했으며, 한강 상류 용진에 승
                  군을 동원하여 목책을 구축하고 군사를 훈련시켰다. 1596년 이몽학의 난 때는 용진과 여주 파사산성을 수비하였다. 광해군
                  때에 훈련대장과 한성판윤을 지냈다. 병조판서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양혜(襄惠)이다. 『수원읍지』「선생안」에 수원부사 변응
                  성은 1602년(壬寅) 2월에 부임하여 1604년(甲辰) 7월까지 재직한 것으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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