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83 - 오산문화총서 7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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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이정귀에게 기문(記文)을 청한다. 이때 이정귀는 이 산성이 세워지기까지 수고한 인물과 그

                과정을 정리하였다. 「진남루기」에 등장하는 인물은 국왕 선조, 전라순찰사 권율, 도체찰사 유성
                룡, 경기관찰사 유근, 전 영의정 윤두수, 그리고 경기방어사 변후까지 여섯 사람이다. 그러나
                꼭 기억해야 할 사람이 더 있다. 바로 김천일이다.

                 임진왜란의 전개 과정을 날짜별로 기록한 남원의병장 조경남의 『난중잡록』에도 독산성이 등
                장한다. 1592년 7월에 “지난달 23일에 의병장(김천일)을 따라 수원산성에 이르러 5일간을 머물

                렀다.”는 구절과 10월에 “전라감사 권율이 수원 독성에 있으면서”라는 구절이다. 수원부사를 지
                낸 김천일(1537~1593)은 일찍부터 독산성의 중요성을 파악하고 있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나주에서 의병을 일으킨 김천일은 수원으로 이동하여 6월 초에 독산성에 입성한다. 이 소식을

                들은 선조는 김천일에게 ‘창의사’라는 칭호를 내린다. 김천일이 독산성에 부대를 주둔시켜 지역
                                                                                          4)
                의 민심을 안정시키고 적에게 빌붙은 반역자를 처단하자 흩어졌던 지역민들이 돌아왔다.  오산
                을 비롯한 경기도 전역에서도 의병진에 참가한 사람이 늘어났다. 지리에 밝은 지역 의병을 조

                직하여 유격전으로 적을 공략하여 전과를 올렸다. 독산성에서 두 달 동안 활동하던 김천일은 8
                월에 전라병사 최원과 함께 강화도로 부대를 옮겼다. 강화도에 주둔하며 적 400여 명을 참살하
                고, 적이 남해안으로 후퇴하자 추격하며 경상도로 내려간 김천일은 1차 진주성 전투에서 패한

                분풀이로 왜적이 진주성에 총집결하는 순간에 진주성에서 입성하여 전투를 총지휘하다가 장렬
                하게 전사한다.

                 김천일 다음으로 독산성에 입성한 장수는 전라도순찰사 권율이다. 한양을 향해 진군하던 권
                율이 독산성에서 활약한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그해 겨울 왜군 총사령관 우키타 히데이에 부
                대의 포위 공격을 받지만, 유격전과 지구전으로 물리쳤다. 이 전투로 <세마대의 전설>이 탄생

                되었다. 권율 부대가 행주산성에서 아군의 10배나 되는 왜적의 총공세를 물리친 공으로 권율은
                도원수에 올랐다. 행주대첩은 조정과 비변사도 독산성을 주목하도록 만든 전투였다.


















                4) 『선조수정실록』26권, 선조 25년(1592) 6월 1일 기축


                                                                       독산성 복원을 향한 첫걸음  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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