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35 - 오산학 연구 4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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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고종때에 계속적으로 발생한 민란은 이미 해체기에 있던 조선 봉건사회의 해체를 더욱 촉진하
는 한편 동학농민전쟁의 원류가 되었다.
1894년 동학농민전쟁 전까지 고종때 발생한 민란은 대략 59회 정도로 추산된다. 그러나 이는 자료에
남아있는 경우이며, 중앙에 보고조차 되지 않은 민란까지 합하면 100여건에 달한다. 시기적으로 유
례없는 한재(旱災)가 발생한 1888년을 시작으로 1893년에 집중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중략)
1888년을 경계로 민란은 더욱 격화되고 전국적으로 확산되어갔다. 민란은 해마다 일상적으로 일어
났으며, 인접지역으로 쉽게 확산되었다. 마침내 1890년대 초에는 민란 발생이 전국적으로 만연하여
일상화되었다. 특히 1893년에는 민란의 절정기라 할 정도로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민란이 발생하였
다. 이 해에만 65건 이상의 민란이 전국 각지에서 발생하였다. 34)
민중들의 생존을 위한 처절한 투쟁이 일상화된 시대이다. 백성들을 지키고 보살펴야하는 국
가권력이 가장 기본적인 생존권조차 지켜줄 수 없었다. 이렇게 되자 민중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지키고 생존해야하는 처지가 되었다. 극심한 수탈구조와 봉건지배체제의 해체속에서 삶을 향한
뜨거운 몸부림이 민란이었다.
19세기 전반에 걸쳐 전국적으로 들불처럼 번져나간 민란은 우리 역사 속에서 한번도 성공하
지 못했다. 1811년 일어난 홍경래의 난도, 전국적으로 들불처럼 퍼져나간 1862년 임술민란도,
그리고 1894년 가장 커다랗게 일어난 동학농민전쟁까지 모두 실패하고 말았다. 이런 좌절과 실
패가 아기장수이야기에 생명력을 불어넣은 것이다. 내가 성공하지 못한 것, 당대에 이루지 못한
패배가 역설적으로 아기장수의 생명을 연장하고 영원히 살게 하고 있다. 한번도 제대로 역량을
발휘하지 못했지만 아기가 장성해서 큰 뜻을 편다면 우리들의 이상세계를 만들어줄 거라는 희
망을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살고 있는 당대는 언제나 난세이고 극복해야할 기존 질서가 있다. 그 속에서 나약한 인
간은 좌절하고 방황하고 두려움에 떤다. 누군가 내 삶을, 우리의 삶을 풍족하고 만족스럽게 해
주길 바라면서. 비록 나는 나약하고 비굴해서 나서고 앞장서지 못하지만 아기장수인 누군가는
그렇게 해주길 바라는 맘이다.
그리고 지금의 삶이 행복하고 만족스럽다면 아기장수는 태어나지 못할 것이다. 현재의 삶이
고통스럽고 절망적이라서 아기장수는 태어난다. 현실을 극복해달라는 사람들의 뜨겁고 치열
한 열망 속에 아기장수는 존재한다. 어지럽고 혼탁한 세상이 아기장수를 다시 한번 소환하는
34) 고성훈 외 앞의 책 305-306쪽
아기장수 이야기의 지속성과 어머니의 역할 그리고 오산 아기장수 이야기 2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