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30 - 오산학 연구 4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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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여자가 남자와 대결하면 안된다는 기존질서를 무의식중에 주입하는 행위이다.
그리고 아기장수이야기를 전달하는 구술자들도 마지막에 ‘여자와는 큰 일을 못한다’, ‘여자는
요물이다’, ‘여자 입 이게 참으로 요망하다’, ‘부부도 여자가 알 필요없는 말은 해서는 안 된다’ 등
의 말로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있다. 아기장수의 실패를 어머니에게 책임을 묻고 있는 것으로 가
부장제 속에 남존여비의 이념이 내재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어머니의 존재는 우리의 삶에서 마치 공기와 물 같은 성격이어서 우리의 삶에 핵심적인 것임에도 불
구하고 그 존재 의미는 곧잘 간과되는 듯하다. <아기장수 전설> 역시 아기장수의 ‘어머니’는 이름이
없는 존재로 성스러운 아기장수를 ‘출산’한다. 그러나 아기장수의 어머니는 서사의 후반부로 넘어가
면서 아들에게 가해자로서 비정상적인 모습까지 보인다. 이는 이 이야기가 모성의 두가지 측면인 ‘출
산’과 ‘양육’ 사이의 유기적 관계가 균열을 일으키는 괴이한 구조를 가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즉, ‘어
머니’는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는 지모신적 존재이면서도 ‘여성’이라는 부정적 사회통념으로 자식
의 양육에 실패하고 있는 모습을 보인다. 이는 ‘모성’이라는 여성의 숭고한 가치가 여성에 대한 부정
적 통념으로 왜곡된 것으로 해석된다. 29)
기존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이념, 이데올로기는 교묘하게 생활속에 숨어 사람들의 의식을 지
배한다. 성스러운 아기장수를 출산해 ‘지모신’적인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부정적 사회
통념으로 인하여 숭고한 모성이 왜곡되고 말았다. 그리고 이것은 가부장적인 기존 질서를 지키
기 위한 필연적인 결과였다.
Ⅴ.<아기장수 이야기>는 왜 지금까지 전승되는가
전설은 근거물이 제시되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전설은 내용이 허무냉랑해도 무엇인가의 근거
를 갖고 있다. 이렇듯 실제 역사를 벗어난 전설은 전승되지 않는다. 아기장수이야기는 우리나라
를 대표하는 전설이다.
아기장수이야기의 경우 하늘에서 비범한 장수를 백성들에게 내려주지만 지배층의 논리에 의
29) 이보라 앞의 논문 62-63쪽
228 한민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