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26 - 오산학 연구 4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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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 연산군을 몰아내고 중종이 왕이 된 것이다. 그리고 인조반정은 실리외교를 펼치는 광해군

               을 친명세력이 축출하고 인조를 임금으로 세운 사건이었다. 따라서 왕의 친족과 각각의 지지세
               력간의 권력다툼이었지 새로운 질서를 만들기 위한 피지배층의 저항과 투쟁이 아닌 자기들끼리
               의 밥그릇 싸움이었다.

                흔히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구원하고 새로운 질서로 새로운 세상을 열어줄 백성들의 민란은
               성공하지 못했다.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느냐고 외친 만적도 실패했고 공주 명학소에서 일어

               선 망이 망소이 형제도 뜻을 펴지 못했다. 기존 체제에 도전해서 이긴 역사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 실제 역사의 부족함이 아기장수가 성공하지 못하게 되는 요인이다.
                실제 역사에서 성공하지 못했는데 과거의 이야기를 하면서 성공한 아기장수가 있어 태평성대

               를 이루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당시 빈발했던 농민봉기가 후삼국으로 재편되고 또 고려 건국으로 이어지던 역사적 상황에서 반역

                  자가 국주가 되곤했으니 그 아이가 민중적 영웅인 아기장수가 될 수 없었던 것이다. 다만 비범한 능
                  력을 갖추고도 역적(逆賊)이 된다하여 거세(去勢)되는 아기이야기는 하나의 전통이 되어 전승되는
                  데, 그것이 일정한 역사적 의미(意味)를 획득하여 <아기장수전설>로 형성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즉,
                  아기장수의 패배는 현실 생활과 역사 속에서 민중(民衆)이 겪은 좌절의 경험을 반영하는 것일 수 있
                  다. 지배체계에 저항하여 일어났던 민란(民亂)은 역사상 수없이 많았는데, 그것은 모두 좌절로 끝났
                  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이 <아기장수 전설>의 형성과 전승의 중요한 배경이 되었다.              23)


                수백가지의 아기장수이야기가 모두 실패로 귀결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첫 번째 기존 질서
               를 유지하기 위해 기득권 세력이 심어놓은 지배이념에 민중들이 무지막지하고 교묘하게 세뇌되
               어 있었기 때문이다. 평민이 장수를 낳으면 역적이 되어 삼족을 멸한다는 강고한 이데올로기에

               민중들 스스로가 자신들의 미래를 가로막게 했다. 두 번째는 인간의 근원적인 공포인 죽음과 나
               와 다른 이물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이다. 그리고 세 번째 이유는 역사에서 이루어지지 않은 실
               제 사실을 성공한 이야기로 바꿔 얘기할 수 없었던 것이다.













               23) 이보라 앞의 논문 47쪽



               224  한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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