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24 - 오산학 연구 4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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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들의 세상을 열어갈 수 있는 장수를 죽이고 말았다.
...이제 태어난지 얼마 안되는 어린 아기를 그렇게 무자비한 방법으로(돌로 눌러 죽일 때 아기가 버둥
버둥 대지만 그대로 몇시간이고, 또는 저녁무렵까지 꾹 눌러 기어이 죽이고 만다) 죽이면서 어느 부
모도 슬픈 기색이 없다는 건 그들의 행동을 지배하는 것은 그들 자신의 의식이 아니라 지배층의 이
데올로기이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즉 행위 주체는 부모들이었지만 그들로 하여금 그런 행동을
하게끔 몰아세운 논리는 지배층의 이데올로기라고 할 수 있다. 부모들(또는 주변인들) 자신의 천륜을
거스르는 엄청난 행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거나 망설이지 않으며, 자신들로 하여금 그런 몰
인정한 행위를 하게 만든 당대의 상황을 개탄해 하지 않는다. 다만 마땅히 해야할 일을 해치워야한
다는 태도를 보이며 서두른다. 부모들의 이러한 행위는 반대세력의 성장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려는
지배층의 이데올로기가 얼마나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20)
자신들이 낳은 자식을 자신들의 손으로 죽일 수밖에 없는 끔찍한 현실의 무서움이 천륜을 거
스르게 한다. 천륜을 거스를 만큼 공고화된 지배이념-평민에게서 장수가 나면 삼족을 멸한다-
은 ‘인간사회의 근본윤리를 무시할 만큼’ 사회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 자식을 죽이
면서 마땅히 해야할 일을 했다는 태도는 기존 질서를 유지하기위해 얼마나 무지막지하고 교묘
하게 세뇌되었는지 잘 보여준다. 민중들은 자신들의 행동이 자신들 스스로의 미래를 지우고 있
다는 사실을 모른채 오늘의 안위만으로 만족하고 있다. 이 세상을 위해 마치 큰일이라도 해낸
것처럼….
3.죽음에 대한 공포와 이물(異物)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
한편 아기장수의 실패 원인을 공포에서 찾기도 한다.
공포는 인간의 근원적인 감정 중에서도 가장 강한 자극과 지속력을 가진다. 만약 공포에 제대로 대
응하지 못 할 때에는 일상적인 생활의 영위가 힘들어질 정도로 인간 삶에 강력한 파급력을 행사한
다. 따라서 우리가 건강하고 온전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공포라는 감정을 잘 이해하고 이에 대
한 적절한 대응이 필요하다.
...(중력)
20) 강유리 앞의 책 273쪽
222 한민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