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23 - 오산학 연구 4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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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모르는 위협의 싹을 자르는 것이다. 기존 질서에 조금이라도 틈을 만들지 않겠다는 견고하고
확고한 의지의 표현이다.
아기장수의 죽음을 요구하는 것은 기존 질서를 고수하려는 자들이며, 이들이 기존의 질서를 고수하
려는 이유는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역적이 될지도 모른다는 것은 전적으
로 지배집단의 시각이다. 아기장수를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현재의 안정된 질서를 위협할 존재로 규
정하여 그를 제거하려는 지배집단의 이기심이, 충(忠)이라는 이념의 외피를 쓰고 아기장수 가족들의
의식에 개입하고 있는 것이다. 두명의 지도자를 섬길 수 없다는 충(忠)의 이념은, 지배집단의 입장에
서 보면 자신들의 기득권을 위협하는 어떤 세력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의지의 표명일 따름이
다.
...(중략)
뿐만아니라 부모가 자기 자식을 죽이려 할 만큼, 그리고 자식의 존재를 기쁨이 아니라 생존을 위협
하는 두려움으로 받아들일 만큼 지배체제가 견고하고 완강한 것으로 그려진다. 결국 아기장수의 비
극적인 죽음은, 지배집단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보호하기 위해 허울 좋게 내건 ‘충(忠)’의 이념이 ‘가
족 간의 인정(人情)’과 ‘근친 살해불가(不可)’라는 인간사회의 근본윤리를 무시할 만큼 독단적이고 편
협한 가치임을 반증한다. 19)
피지배층인 평민의 자식이 장수로 태어난다면 기존질서를 파괴하고 새로운 질서를 추구할 것
이기 때문에 기존의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지배층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반대로 말하면 지금의 역적은 피지배층의 장수가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기존의 질서와 모순
을 혁파하고 새로운 자신들의 세상을 만들어 줄 장수가 태어난 것이다. 그런데 평민들은 자신들
의 장수를 자신들의 손으로 죽이고 만다. 왜 자신들의 손으로 자신들을 대변하고 지켜줄 장수를
죽이게 되는가?
‘평민이 장수를 낳으면 관가에서 삼족(三族)을 멸한다’는 이유로 죽이고 만다.
뛰어난 인물이 평민-피지배층-에서 태어나면 기존 질서를 위협하고 무너뜨리려는 역적이 되
고, 이렇게 되면 집안이 망하니 아기를 죽여야한다는 논리다. 부모나 동네사람들은 아무 거리
낌 없이 이 세상에 태어난지 몇일 않되는 아기를 다디미돌로, 맷돌 등으로 눌러 죽인다. 아기는
이 세상에 어떤 해도 끼치지 않았는데 단지 비범한 능력(날개가 있고 힘이 세다는 등) 때문에 죽
임을 당한다. 아기에게 날개가 있어 평민들에게 하늘이 내린 장수라고 증빙되는데, 그들 스스로
19) 김영희 앞의 논문 134-135쪽
아기장수 이야기의 지속성과 어머니의 역할 그리고 오산 아기장수 이야기 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