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20 - 오산학 연구 4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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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벽인 곳이다. '옳다, 이젠 잡았구나.'하며 아버지가 가까이 가자 오찰방이 그 천인 절벽에서 덜썩 떨
어져 내렸다. 아이고, 아들이 죽었으니 이를 어쩌나!' 하고 아버지가 망연자실, 허겁지겁 오름에서 내
려오는데, 나막신 신은 아들놈이 오름 서쪽으로 건들건들 올라오고 있는게 아닌가. 얼른 가서 시체나
거두려던 아버지는 어이가 없어 집으로 돌아왔다. 아버지는 그 높은 절벽에서 나막신을 신은 채 뛰
어내린 아들이 상처 하나 없이 집으로 돌아온 게 아무래도 이상했다. 그래서 아들이 깊이 잠든 틈을
타서 옷을 벗겨 보았는데, 양쪽 겨드랑이에 거짓말같이 날개가 돋아 있었다. 그대로 두었다가 소문이
라도 나면 역적으로 몰릴 것이 뻔하다. 아버지는 오찰방의 날개를 불로 지져 없애고 아들을 달래었
다.
오찰방은 자라서 벼슬을 하겠다고 서울에 올라갔다. 이때 마침 서울에서는 호조판서의 호적궤에 자
꾸 도둑이 들어 중요한 문서와 돈을 가져가서, 이 도둑을 잡는 자에게 천금 상에 만호(萬戶)로 봉하
겠다고 거리 거리마다 방이 나붙어 있었다. 오찰방은 '아무련들 내 힘을 가지고 요 도둑 하나 못 잡
으랴' 하고 지원하여 나섰다. 도둑은 이만저만한 장사가 아닌데다 무술이 뛰어나다는 말이 돌고 있
었다. 오찰방은 좋은 말을 빌려 타고 도둑을 찾아 나섰다. 며칠 후 도둑을 찾아낸 오찰방은 말에 채
찍을 놓아 도둑을 쫓았다. 도둑은 소를 타고 있었는데, 소의 두 뿔에다 시퍼런 칼을 묶고, 또 두 손에
시퍼런 칼을 쥐고 덤벼들었다. 그러나 눈이라도 깜짝할 오찰방이 아니다. 도둑은 이제까지 자기를 잡
으려는 놈과 몇 번 싸웠지만, 이렇게 용감히 덤비는 놈은 처음이었다.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니구나 하
고 천기를 짚어 보니, 제주에 사는 오 아무개한테 죽게 되어 있었다. 혹시 요놈이 그놈이 아닌가 싶
어서, “네가 제주 사는 오 아무개냐?” 하고 물었다. “허, 네가 어찌 내 이름을 아느냐?“ 하고 오찰방
이 놀라자, ”아차, 내 목숨은 그만이로구나, 네 손에 죽으라고 되어 있으니 할 수 없다. 모가지를 떼어
가라." 하며, 모가지를 순순히 내놓았다. 오찰방은 도둑의 목을 베어 말꼬리에 달고 한양으로 들어갔
다. 한양에서는 제주 놈이 무서운 도둑을 잡아온다고 야단들이었다. 그런데 오찰방이 말을 타고 궁중
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이놈, 제주놈이 말을 탄 채 어딜 들어오려고 하느냐!” 하는 호통 소리가 떨어
졌다. 오찰방은 역시 좁은 데에서 난 사람이다. 마음이 졸해서 얼른 말에서 내려 걸어 들어갔다. 오찰
방은 의기양양하여 임금께 도둑의 목을 바쳤다. 그런데 임금이 상을 주기는커녕 “이놈을 얼른 옥에
가두라”고 명하여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이렇게 무서운 도둑을 잡는 것을 보니, 그대로
두었다가는 역모를 꾸밀 우려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얼마 후 임금이 직접 오찰방을 문초했는
데, 제주놈에다가 궁중에 들어올 때 말에서 내려 걸어 들어온 것을 알고는, "서울놈 같으면 사형을 시
킬 것인데, 제주놈이니 큰일은 못할 것이로다. 너에게 자그마한 벼슬이나 줄 것이니, 어서 나가서 일
이 나 잘해라" 하고, 찰방 벼슬을 내주고 제주로 돌려보냈다고 한다. 16)
출처 : 디지털제주문화대전
16)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18 한민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