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19 - 오산학 연구 4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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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립이 적나라하게 나타난다.
뛰어난 능력을 가진 아기가 가난한 평민의 집에서 태어나자 기존 질서와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관군이 나서 아기를 찾아 죽이고 무덤까지 파헤쳐 제거한다. 아기가 자라서 어떤 사회적인
역할을 한적도 없지만 아이의 능력이 뛰어나다는 이유만으로 제거의 대상이 된 것이다.
그리고 어머니의 두 번의 실수와 발설로 인한 패배가 부각되어 있다.
<생존형> 아기장수 이야기는 제주도에 주로 분포하며 아기장수가 날개를 제거당하고 살아간
다는 이야기이다.
오찰방은 조선시대 현종 때 대정고을에서 태어났는데, 원래 이름은 영관이었다. 오찰방의 아버지는
부인이 임신을 하자 튼튼한 자식을 낳으라고 소 열두 마리를 잡아서 먹였다. 그런데 낳고 보니 딸이
었다. 다음에 또 부인이 임신을 하자 오찰방의 아버지는 이번에도 또 딸을 낳을까봐 소 아홉 마리를
잡아서 먹였다. 그런데 낳고 보니 아들이었다. 아버지는 열두 마리를 먹일 것을 잘못했다고 약간 서
운해 했다. 이 아이가 후에 찰방이 된다.
오찰방은 어릴 때부터 힘이 셌다. 대정고을에서 씨름판이 열렸다 하면 오찰방이 독판을 쳤다. 제주
삼읍(三邑)에서 장사들이 모여들어도 오찰방을 당해 낼 사람이 없었다. “나를 이길 사람은 아무도 없
어”하고 오찰방이 잘난 체를 하자 그 누나가, “그러면 이번 한림에서 다시 씨름판이 열리는데, 거기
나가 보면 너를 이길 장사가 올 것이다” 하고 말했다. 오찰방은 픽 웃어 넘겼다. 마침내 한림 씨름판
이 열렸는데, 몇 사람이 달려들어도 오찰방을 이기는 장사가 없었다. 오찰방은 득의양양하여 군중을
휘둘러보았다. 그때 조금 연약해 보이는 사내가 구경꾼들 속에서 나왔다. 사내는 의외로 힘이 세었
다. 오찰방은 있는 힘을 다 해 내둘러 보았으나 끝내 지고 말았다. 생전 처음 씨름에서 진 오찰방은
집에 와서도 분을 참지 못하고 억울하다고 누나에게 야단이었다. 그런데 그 연약한 듯한 사내는 사
실 오찰방의 누나였다. 오찰방이 너무 안하무인으로 힘자랑을 하는 것 같아 기를 꺾어 주려고 남장
을 하고 씨름판에 나섰던 것이다. 누나는 오찰방이 며칠째 분을 참지 못하고 끙끙 앓자, 오찰방의 진
신(가죽으로 짚 신처럼 엮어 놓은 신)을 집의 서까래 틈에다 끼워 놓았다. 오찰방은 진신이 서까래에
끼워져 있으니까 빼내려고 잡아 당겼는데, 아무리 힘을 써봐도 빼낼 수가 없었다. 그런데 누나가 와
서는, “뭘 그렇게 힘을 쓰느냐?” 하면서 쓱 하고 진신을 빼내 준다. 그제야 오찰방은 씨름판의 장사
가 누나라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오찰방이 어렸을 때의 일이다. 장난이 심하여 아버지가 혼을 내주려고 하는데 나막신을 신은 채 도
망을 친다. ‘요놈, 이번엔 가만 두지 않겠다’ 하고 아버지는 짚신을 신고 뒤를 쫓았다. 나막신을 신은
놈이 도망을 가면 얼마나 갈까 싶었는데, 바굼지 오름으로 부리나케 뛰어 올라간다. 슬슬 화가 난 아
버지는 '이놈을 꼭 붙잡아 행실을 가르쳐야지' 하고 봉우리 위로 쫓아 올라갔다. 드디어 오찰방이 상
봉의 칼바위까지 도망가서 우두커니 서 있는 게 보였다. '칼바위'라는 곳은 정말 칼로 끊은 듯이 천인
아기장수 이야기의 지속성과 어머니의 역할 그리고 오산 아기장수 이야기 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