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29 - 오산학 연구 4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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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이 되어 보고자 군사를 모아 정부를 치러 길을 떠나려고 하는데 그의 누이가 굳이 말리며 ‘한
                   해 농사를 더 지어 때를 기다리는 것이 좋다’ 하므로 그는 ‘대장부가 큰 일을 하려고 길을 떠나는데

                   요망스럽게 계집년이 무슨 참견이냐’고 하며 칼로 누이의 목을 베어버리고 떠났다.                26)


                   김덕령이 누이를 죽이려고 하다가 서로 활로 쏘아 맞추기로 하였는데 쏜 화살마다 두 화살이 맞부딪
                   쳐 다시 내기를 하였다. 김덕령은 나막신을 신고 무등산을 한바퀴 돌고 누이는 베를 짜서 도포를 짓
                   기로 했는데 누이가 동생을 살리기 위해 일부러 옷고름을 달지 않고 동생을 기다렸다. 그래서 김덕
                   령이 누이를 죽이고 말았다.     27)


                   이몽학은 홀어머니와 누이 세 식구가 살았다. 이몽학은 힘이 장사였으나 지혜는 누이에게 미치지 못
                   하였다. 누이는 이몽학이 자신의 힘센 것만 믿고 언제나 거만한 점을 늘 걱정하였다. 반면 이몽학은

                   어떻게 하면 자기가 누이의 지혜를 누를 수 있을까 긍긍하였다. 그들은 종종 힘과 지혜겨루기 내기
                   를 하곤 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오누이는 목숨을 건 내기를 하였다. 이몽학은 나막신을 신고 일주일
                   걸리는 서울나들이를 하루만에 다녀오고, 그 사이에 누이는 10리 성을 쌓기로 하였던 것이다. 이 내
                   기에서 지는 사람은 목을 베기로 한 살벌한 시합이었다. 드디어 운명의 시합은 시작되었다. 해가 거
                   의 질 무렵 누이는 쉽게 성을 완성하고 막 성문을 매달려는 참이었다. 옆에서 이를 구경하던 어머니
                   는 깜짝 놀랐다. 남매가 늘 경쟁 상대였기 때문에 이 시합에 지는 사람은 틀림없이 죽을 터였다. 어
                   머니는 아들보다 딸이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어머니는 팥죽 한동이를 쑤어서 딸에게

                   먹으라고 권하였다. 딸은 어머니의 의도를 빤히 알았지만 어머니의 뜻대로 팥죽을 받아먹었다. 뜨거
                   운 팥죽을 식혀서 조금 먹으려는데 이몽학이 들이 닥쳤다. 이몽학은 누이가 성을 다 완성하지 못했
                   음을 확인한 후 비정하게도 누이의 목을 쳐서 그 자리에서 죽었다. 지금도 은산에 가면 그의 누이가
                   다 먹지도 못하고 버렸다는 팥죽땅이 있다.        28)


                 이 이야기들 속에서 남동생은 누이를 아무거리낌 없이 죽인다. 누이는 동생의 앞날을 걱정해

                조언으로 하는 말인데 ‘요망스런 계집년’이고 자신보다 뛰어난 능력을 가진 누이를 시기해 죽이
                는 것이다. 누이의 죽음을 맞이하는 태도 또한 남동생보다 훨씬 뛰어났음에도 반항 한번 없이

                죽음을 받아들인다.
                 누이를 죽이는 행위가 인륜을 저버리는 잔혹하고 있을 수 없는 일인데도 불구하고 이야기 속
                에서는 거리낌 없이 행해지고 있다. 이것은 이 이야기가 전승되는 사회분위기를 대변하는 것으




                26) 김영희 앞의 논문 29쪽
                27) 김영희 앞의 논문 29쪽
                28) 고성훈 외 『민란의 시대』 가람기획 2000, 49-50쪽


                                      아기장수 이야기의 지속성과 어머니의 역할 그리고 오산 아기장수 이야기  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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