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33 - 오산학 연구 4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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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나이 먹으면 자신보다 어린 세대에게 할 말이 있다. 비록 ‘꼰대’라고 손가락질 받을 수

                있지만 자신의 지난 삶을 반면교사 삼아 후배들이 더 잘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하는 말이다. 그
                중에서 성공하지 못한 일,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동경과 회한이 남게 마련이다. <아기장수이야
                기>의 실패가 기성세대에겐 동경과 회한으로 남아 있어 후배들에게 계속적으로 전해지는 것은

                아닐까? 아기장수가 한번이라도 성공해서 세상이 바뀌어 상민과 양반이라는 세습신분제가 철
                폐되는 등 새롭게 질서가 수립되었다면 어땠을까하는 소망을 얘기하고 있다.



                3. 처절한 생존을 위한 투쟁의 역사



                 아기장수이야기가 오랜 세월 줄기차게 이어오며 전승되는 이유는 민중의 삶과 역사에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것은 지금 현재와 연결된 가장 가까운 과거로부터의 연관성이 클 수밖에
                없다. 현재와 연결된 과거는 일제시대를 거처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현재 채록된 아기장

                수설화의 대부분이 왕조시대를 배경으로 하기 때문에 일제시대가 아닌 조선시대를 살펴볼 필요
                가 있다.
                 조선은 14세기말 성리학을 통치이념으로 건국하여 20세기 초에 역사에서 사라진다. 조선이

                사라지기전 100년을 <민란의 시대>라고 부를 정도로 민란이 빈발하던 시대였다. 전국 각지를
                막론하고 끊임없이 민란이 일어나는데 그 이유는 한마디로 말해 먹고 살기 힘들어서이다.

                 19세기 조선은 정조 사후 왕위를 계승하는 순조때부터 안동김씨의 세도정치가 시작된다. 안
                동김씨 일문일족에 의해 나라의 대소사가 좌지우지 되었다. 그들이 군사권, 재정권, 인사권을
                모조리 거머쥐었기 때문이다.



                   안동김씨는 군사권·재정권·인사권을 모조리 거머쥐었다. 또 재부(財富)도 차지해, 당시 전국적으
                   로 10만석의 도조(賭租, 남의 논밭을 빌려서 부치고 그 대가로 해마다 내는 벼)를 받는 10대 대지주
                   중에서 안동김씨가 일고여덟을 헤아렸다고 한다.

                   .....(중략)
                   이런 정치적 비리에 따라 사회·경제적 모순이 첨예화되어 갔다. 세도정치 아래에서 태어난 일문일
                   족의 독점적 지배체제는 매관매직을 통한 부정, 매관매직으로 배출된 수령들의 삼정(三政)을 통한
                   수탈, 여기에서 파생된 부의 편재를 야기했다. 특수층의 대토지 소유가 심화되고 영세농민에게는 과
                   중한 지대가 부과되었다.     32)



                32) 이이화 『민란의 시대-조선의 마지막 100년』 한겨레출판 2017, 18-19쪽


                                      아기장수 이야기의 지속성과 어머니의 역할 그리고 오산 아기장수 이야기  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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