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99 - 오산학 연구 4집
P. 199
고모교회에 기증했다.
고모교회 목사와 신도 양 씨는 가죽나무 기둥 4개를 땅에 박아 세웠다. 그리고 그 위에 가로
막대를 걸어 나무종탑을 세웠다. 그 모습은 1905년, 미국인 선교사가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53)
에 세운 한옥 교회의 나무종탑 과 흡사하였다고 전한다. 양씨 어른은 가죽나무로 종탑을 세우
던 일화를 이렇게 이야기 한다.
“옛날에는 집집마다 대여섯 그루의 가죽나무가 울타리에 있었다. 입피골은 가죽나무 천지였
다. 가죽나무는 단단하고 썩지 않아 집을 짓는 기둥으로 많이 썼다. 그런데 나무로 집을 짓지 않
는 요즘에는 쓸모없는 나무가 되고 말았다. 그래서 옛집의 기둥으로 썼던 가죽나무를 담장의 축
대로 썼다.”
필자는 그 말을 듣고 양 씨의 가옥을 찾아가 살펴보았다. 집 뒤의 산기슭에 수십 그루의 가죽
나무로 보강한 축대가 있었다. 블루베리 농사를 짓는 양 씨 댁의 주소는 화성시 마도면 백곡리
554이다. 「또나따 목장」의 옆집이다.
당나라 수입품인 가죽나무는 들불처럼 이 마을 저 마을로 번져 나갔을 것이다. 가가호호의 울
타리에 심어져 이삼십 년 만에 집을 짓는 기둥이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가죽나무는 대나무처럼
아름다운 나무, 가죽(佳竹)이었다.
가죽나무의 어린 순을 나물로 먹는 지역은 중부이남 지역에 분포한다. 그런데 경상북도 북부
인 영주시 부석사 주변에도 매우 많은 가죽나무가 울타리에 자생한다. 10년 공부를 마치고 귀국
한 의상이 당에서 들여와 심은 가죽나무의 정착지로 본다.
화성시 마도면의 옛집은 예외 없이 가죽나무 기둥으로 지은 집이다. 그러므로 입피골과 홍문
골을 같은 위치의 같은 지명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e. 입피골은 이삐골
입피골을 ‘이삐골(馹批谷,一批谷)’로 해석한다면 이곳은 ‘역말(馹,驛馬)’이 위치한 곳이다. ㄹ
받침 용언에서 어간의 끝소리 ㄹ 이 ㄴ,ㅂ,ㅅ,ㅇ 앞에서 탈락하는 현상이다. 우리말의 ‘ㄹ’ 탈락
의 현상으로 보는 ‘이삐골’이다. 이삐골을 신라시대의 대당포구에 딸린 역말로 보는 것이다. ‘一’
과 ‘馹’의 중국어의 소릿값은 이얼싼스(一二三四)의 ‘이’이다.
‘一批’의 뜻은 ‘손으로 한번 때리다’이다. ‘馹批의 뜻은 ‘말 잔등을 철썩 때리다’의 의미다. 그러
53) 나무종탑,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 금산교회.
원효가 成道한 당주계 樴山의 토굴무덤 1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