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95 - 오산학 연구 4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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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가 바라보이는 남양만 화성호이다.
넷, 청명산은 淸明山, 晴明山 등으로 표기한다. 바다의 날씨를 관망하던 산이라는 의미에 부
합한다. 곶머리, 곶뿌리, 금당골, 보초골, 입피골, 가죽포, 왕모대(영종포) 등의 바닷가 마을과
포구를 거느린 산이다.
다섯, 청명산의 동남방에 조선시대의 조운 사창 신창(新倉)이 있었다. 마도면 금당리, 청원리
이다. 신창 주변에 우마를 쉴 수 있는 개천과 너른 풀밭이 위치한다. 그 장소는 마도면 백곡리의
입피골이다.
여섯, 청명산은 100개의 골짜기를 품은 큰 산이다. 그래서 백곡리라는 지명을 얻었다. 그런데
그 표기는 백곡리(百谷里)가 아니라 백곡리(白谷里)이다. 100(百)에서 하나(一)가 모자라는 99
개의 골짜기여서 한 획이 적은 백(白)으로 썼다는 것이 면민들의 설명이다.
도-13 청명산
남양반도의 진산 청명산은 남양만 바닷가에 위치한다. 조선시대의 해문(海門)으로 구화역(仇
火驛)과 해운 조창 신창(新倉)을 거느리는 산이다. 그러므로 당주계(唐州界) 직산(樴山,말뚝산)
의 이름에 소통한다.
원효가 成道한 당주계 樴山의 토굴무덤 1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