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91 - 오산학 연구 4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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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12. 경기도 오산의 독산성


                 최초 백제가 축성한 독산성은 쌀을 비축하던 토성이었다. 독산성이 쌀을 비축하였던 군창이
                었다는 것은 독산 보적사에 유래하는 쌀 이야기에 담겨 있다.

                 부산(釜山)은 경기도 오산시 부산동의 옛 지명이었다. 삼국사기 백제 고이왕 5년 2월의 기록
                에 등장한다. 부산의 우리말 이름은 가마뫼였다.

                 고려시대에 이르러 가마뫼는 오산(烏山)으로 바뀌어 불렸다. 대한민국 제1의 항구도시 부산의
                이름에 눌려 오산으로 바뀌었다. 가마뫼(釜山)와 음운이 유사한 오산(烏山)으로 바뀌었다. 검은
                빛깔의 가마와 까마귀가 비슷하므로 오산으로 바뀐 것으로 추정된다. 오산시 부산동에 백제 부

                산의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다.
                 곶산(串山)은 경기도 화성시 수원고읍성의 진산이다. 17세기에 제작된 동여비고 남양지방도

                에 串山(곶산)으로 등장한다. 조선 정조 때에 이르러 곶산은 화산(花山)으로 바뀌어 불린다. 곶
                산과 꽃산의 소릿값이 유사하므로 화산으로 바뀌었다.
                 연산(鳶山)은 경기도 안산시의 진산이다. 수리산의 옛 이름이다. 고구려 광개토왕비문에는 고

                자연성(古舍鳶城)으로 등장한다. 지금의 이름은 경기도 시흥시 연성동과 안산시 고잔동의 수리
                산이다.
                 관산(管山)은 충청북도 옥천군의 진산이다. 삼국시대 옥천군의 옛 지명은 관성군(管城郡)이었

                다. 관산(管山)의 관(管)은 상수도관 하수도관의 ‘대롱 관(管)’이다. 물을 멀리 보낼 수 있는 대나
                무로 만든 물관을 의미한다. 백제 성왕과 신라 진흥왕이 벌인 관산성 전투는 처절하였다.



                                                               원효가 成道한 당주계 樴山의 토굴무덤  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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