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88 - 오산학 연구 4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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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인 지금도 유효한 항로이다. ‘仁川-烟台’, ‘仁川-威海’, ‘仁川-石島(赤山)’, ‘仁川-靑島’,
‘仁川-燕雲’ 등이다.
등주는 신라의 사신 김춘추와 김법민, 원효와 의상, 김영과 최치원 등이 입당한 대당항로의
기착지였다. 또한 당장 소정방과 부장 이무 등이 13만 대군을 이끌고 건너온 출발지였다.
산동성 석도항의 신라시대의 이름은 적산포(赤山浦)였다. 석도(石島)의 적산(赤山)이 붉은 빛
을 띠는 암석으로 이루어진 때문이었다. 적산에 당과 신라, 일본의 해상무역을 주도하였던 장보
고가 세운 법화원과 신라방이 있었다.
의상이 탄 상선은 적산포(석도항)에 도착하여 신라무역품의 일부를 풀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장보고가 세운 적산포 법화원은 동중국해의 중심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남으로 청도(靑島), 연
운(燕雲), 상해(上海)를 잇고 북으로 위해(威海), 연태(烟台)를 잇는 연안 해로의 중간에 신라방
이 위치하기 때문이다.
도-10 석도 적산포 법화원
지금도 인천-석도를 운항하는 화동페리(華東Ferry)는 법화원을 찾는 한국 여행객과 중국 보
따리상으로 초만원을 이룬다.
밤으로만 오고가는 화동페리의 가장 큰 특징은 중국 보따리상을 관리하는 ‘인석상인회(仁石商
人會)’이다. 인석상인회의 건장한 장년들이 중국 보따리상들을 훈련병처럼 통제한다. 인석상인
186 임종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