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73 - 오산학 연구 4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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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경 은 원효가 성도한 당주계(唐州界) 직산(樴山)을 화성시 당성 주변의 어느 산으로 보
았다. 당주계는 ‘당주(唐州,화성)의 어느 지점’이고 직산은 ‘당주의 어떤 산’이라고 주장하였다.
28)
김성태 는 원효의 성도처를 ‘당성(唐城) 안의 어떤 고분’으로 보았다. ‘의상이 왕족이었으므로
원효와 의상은 당성의 객관에 묵었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29)
윤명철 은 원효의 성도처를 ‘당성 주변의 고구려 석실 고분’으로 보았다. 당항성이 ‘신라에 앞
서 고구려의 당성군(唐城郡)이었음’에 근거하였다. 당성(唐城)과 화량진성(花梁鎭城), 마산포(馬
山浦)와 은수포(銀水浦)를 근거 자료로 들었다.
30)
정찬모 는 원효의 성도처를 화성시 마도면 백곡리로 주장한다. 당성 주변에 위치한 백곡리의
백제 고분군을 근거로 삼는다. 가로 1.8m x 세로 3.8m 크기의 백곡리 제2호 석실 고분을 근거
로 든다.
위의 학자들은 당주계 직산의 위치를 당성 주변의 어느 산으로 비정하는데 의견을 같이한다.
이들의 주장에 따라 필자는 본국 해문 당주계 직산(樴山)을 화성시 마도면의 청명산(淸明山,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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晴明山)에 비정한다. 해문과 해문역(海門馹) , 구화역(仇火驛) 과 구화도(仇火島),대부도(大埠
島)와 불도(佛島), 입파도(立波島)와, 입피골(立被谷), 금당골(錦堂谷), 보초골(步哨谷), 회룡골
(回龍谷), 송대(送臺) 등에 근거한다.
33)
남양만(南陽灣) 은 경기도 화성시 남양반도(南陽半島) 서쪽과 충청남도 당진 사이의 남쪽 수
역이다. 전체적으로 좁고 긴 형태의 남서쪽으로 열려 있는 만으로 크게는 아산만, 분향만과 함
께 경기만에 속한다.
화성호(華城湖)는 남양반도의 남서단 궁평리와 우정면 매향리 사이의 만구이다. 2003년, 화
성방조제의 물 막음 공사가 끝나면서 완공되었다. 총 길이 9.8km로 시화방조제(12km)보다 조
금 작다. 농어촌공사에 의해 화성방조제가 건설되면서 화성호(華城湖)와 궁평항(宮坪港)이 새롭
게 조성되었다.
화성호는 남양읍 장덕리에서 만(灣)의 안쪽이 두 갈래로 나뉜다. 남서쪽으로 뻗어 나온 육지
27) 정희경,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강사.
28) 김성태, 경기문화재단 경기학연구센터 수석
29) 윤명철, 동국대학교 교수
30) 정찬모, 화성문화원 향토문화연구소장
31) 해문역(海門馹), 남양지방도, 동여지도, 1686, 양산 대성암 소장.
32) 구화역(仇火驛), 남양도, 18세기, 정신문화연구원 소장.
33) 남양만(南陽灣),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원효가 成道한 당주계 樴山의 토굴무덤 1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