를 매어두던 소나무였다. 그래서 ‘쌍송리’라는 지명도 이 지역에 남았다. 가죽포와 금당리에 살아남은 몇몇 소나무는 그 옛날의 영화를 떠올린다. 이 지역에 울창했던 소나무는 임진왜란으로 불타버린 경복궁 재건에 수없이 베어졌다. 수 백 그루의 아름드리 소나 무가 베어져 이곳 가죽포에서 도성 한성의 마포(麻浦)로 실려 갔다. 도-5. 가죽포의 소나무 원효가 成道한 당주계 樴山의 토굴무덤 1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