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76 - 오산학 연구 4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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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시나라에 도착한 붓다는 사라나무 숲으로 가서 아난다에게 부탁했다. 사라나무 사이에 머리를 북
                  쪽으로 향하도록 자리를 깔게 하였다. 붓다가 오른쪽 옆구리를 바닥에 대고 다리를 포개고 누워 명

                  상에 들어가자 사라쌍수는 계절에 관계없이 수많은 꽃을 피웠다. 붓다에 대한 경의의 표시로 꽃잎을
                  떨어뜨려 흩날렸다.
                  이때 아난다가 명상에 잠겨있는 붓다에게 물었다. 붓다의 열반 후에 우안거를 끝낸 비구니들이 누
                  구에게서 설법을 들을 것인가? 고 슬퍼하자, 붓다는 자신이 떠난 후 기념할 만한 성지를 참배하면서
                  자신을 생각하고 계속 수행하기를 당부하였다. 이 성지는 바로 붓다가 태어난 곳, 붓다가 깨달음을
                  이룬 곳, 붓다가 처음으로 설법한 곳, 그리고 붓다가 열반한 곳이었다.


                입파도와 입피골은 해로로 매우 긴밀한 유대를 갖는다. 두 지역을 연결하는 것은 마도면 금당
               리의 가죽포(佳竹浦)와 서신면 백미리의 백미포(白味浦), 서신면 용두리의 영종포(永宗浦)와 서
               신면 궁평리의 영생포(永生浦)였다.

                화성방조제로 뱃길이 막힌 지금은 서신면 궁평리의 궁평항과 서신면 전곡리의 전곡항이 그
               역할을 대신한다. 전곡항에서 출발하는 경기도선을 타면 40분의 가까운 거리이고, 궁평항에서
               서해도선을 타면 1시간의 거리에 위치한다.

                대당항로에 위치한 입파도는 붓다의 모습을 꼭 빼어 닮았다. 머리를 북쪽에 두고 열반하는 붓
               다의 형상이 곧 입파도이다.



               3. 가죽포(佳竹浦)의 소나무



                가죽포(佳竹浦)는 화성시 마도면 금당리에 위치한다. 개죽포, 개질포, 개죽이로 불렸던 마도
               면의 포구였다. 개죽포와 개죽이는 ‘곤죽 같은 갯벌’로 파악된다. 이 지역의 바닷가는 드넓은 갯

               벌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가죽포는 마도면의 바닷가에 열린 여러 개의 포구를 통칭하는 이름이다. 화성시 마도면 금당
               리, 청원리, 쌍송리, 신남리에 위치하는 여러 포구가 그들이다. 조선시대 가죽포 인근의 금당리
                                   38)
               에 해운 조창 신창(新倉) 이 있었다.
                가죽포의 중심 위치는 마도면 금당리이다. 금당리에 딸린 가죽포의 너비는 약 445m이다. 마
               도면 금당리 334-2의 곶머리와 마도면 금당리 702-7의 곶뿌리의 갯골이 만드는 포구이다.

                가죽포의 좌우 문턱에는 아름드리 소나무가 아직도 건재하다. 바다에서 마을로 들어오는 배



               38) 신창(新倉), 남양도, 18세기 후반, 31×42cm, 정신문화연구원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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