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5 - 오산학 연구 4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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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 어려웠다. 일찍이 조정에서 수원에 효종의 능을 조성하려는 논의가 치열하게 벌어졌으나

                민생을 어렵게 한다는 여론에 밀려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정조가 수원을 자급자족의 신도시로 건설하기로 마음을 먹었을 때에 한 통의 상소가 올라왔
                다. 1790년 6월 부사직 강유(姜游)가 상소로 수원에 성을 쌓고 참호를 설치하여 유사시에 대비
                                     18)
                할 것을 건의했던 것이다.  수원에 현륭원을 천봉한 지 채 1년이 되지 않은 시점이다.
                 “수원은 국가의 중요한 진(鎭)이고 막중한 능침을 받드는 곳이니, 특별한 조치가 있어야 할 것

                입니다. 이번에 새읍을 옮겼으나 성지(城池)의 방어설치가 없습니다. …여기에 성을 쌓아 독산
                성과 서로 견제하는 세력을 만들고, 유사시에 협공의 형세를 이루게 한다면 설사 난폭하고 교활
                한 적이 있다 하더라도 병법에서 꺼리는 것임을 알고 감히 두 성 사이를 엿보지 못할 것입니다.”

                 때맞춘 강유의 상소를 계기로 정조는 수원에 성곽 건설을 공론화시켰다. 그 일머리는 장용영
                을 통해 이루어졌다. 정조는 취약한 호위를 강화기 위해 1785년에 창설한 친위부대 장용위를
                장용영으로 확대하였다. 1789년 사도세자의 묘소를 현륭원으로 이장한 후 현륭원 보호와 행궁

                호위를 명분으로 360여 명의 장용영 병력을 수원 출신의 장관에게 맡겨 수원과 현륭원에 배치
                한 것이다. 이때부터 장용영은 화성 건설의 준비 단계부터 마무리까지 깊숙하게 관여했다.
                 정조는 수원에 힘을 싣기 위해 채제공을 수원 유수로 임명했다. 정승을 지낸 남인 우두머리

                채제공을 수원 유수로 임명한 일은 화성 건설을 위한 결정적 포석이었다. 여기에 장용영 대장
                조심태와 도청 이유경을 수원 외영에 배치하여 축성을 위한 지휘부를 구축했다. 이렇게 실무를

                맡은 핵심 관료들을 배치한 정조는 1794년 봄, 화성 축성을 지시하였다.
                 공사가 시작된 이후 정조는 인화를 가장 우선했다. 신하들은 화성 건설이 국가사업인 만큼 전
                례대로 승려들을 부역에 동원하고 지역 백성들에게도 돌아가며 일정한 기일을 부역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건의했다. 북한산성과 남한산성을 비롯하여 산성을 축성하거나 보수할 때
                늘 승군이 동원되었다. 채제공도 화성 성역에 승군을 동원할 것을 주장했다.

                 “백성과 승군을 묘당으로 하여금 그 거리의 멀고 가까움을 감안하고 그 수효의 많고 적음을
                균등하게 하여 그들로 하여금 며칠 동안 성역에 부역하도록 조발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일
                듯합니다.” 그러나 정조의 생각은 달랐다. “경이 말하지 않더라도 내가 어찌 사세가 이러함을

                모르겠는가. 그러나 본부의 성역에 기어코 한 명의 백성도 노역시키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내가
                                    19)
                뜻한 바가 있어서이다.”  이처럼 정조는 처음부터 승군을 사용하지 않고 일반 백성을 고용해




                18) 정조 14년 6월 10일 1790년
                19) 정조 18년 5월 22일 1794년


                                                                   지리와 성곽에 대한 정조의 생각  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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