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0 - 오산학 연구 4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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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로 버려졌고, 여연과 무창은 아득히 옛 군현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정조는 ‘지리가 정치의 근본’이라고 단언했다. 지리에 대한 정조의 관심은 정치로 연결되고 있
               다. 지리에 대한 관심을 확장하면 국방으로, 국토 관리로 연결된다. 그러므로 지리는 정치의 근
               본이 되는 것이다. 정조는 조선의 성곽이 허술한 것은 지리에 대한 인식이 깊지 못하기 때문이

               라 진단하고, 세종시대에 개척했던 4군6진의 관리조차 부실한 현실을 탄식하고 있다. 만약 관
               리들이 지리에 대해 관심과 지식을 가지고 있다면 국토는 잘 관리될 것이고, 울릉도를 비롯한

               섬이 사람이 살지 않는 빈 섬으로 버려지지 않을 것이라는 통렬한 지적이다. 국토를 잘 활용하
               여 민생을 윤택하게 하기 위해 정조는 정밀한 지도를 제작해야할 필요를 밝히고 있다.
                “명산과 지산의 나뉨이라든지 원류와 지류의 출입에 대해서는 눈앞에 나열하고 손바닥을 보

               듯이 그림으로 그려 표시한 다음에야 물산이 토양에 알맞게 되고 이롭고 해로움을 알 수 있게
               되어서 생활을 윤택하게 하고 교화를 행할 수 있다.”              29)
                정조는 장용대장 조심태와 도청 이유경에게 수원에 화원을 데리고 가서 성터를 포함하여 읍

               내의 마을과 산과 들 중에 시야에 들어오는 곳 모두 도형을 만들고, 인가 중에서 조금 큰 것일
                                                                                            30)
               경우 ‘아무개의 집’이라는 것까지 기록하고 빠짐없이 자세히 그림으로 그려 오도록 지시했다.
               여기서 지리의 활용을 위한 지도 제작에 대한 정조의 각별한 관심을 확인할 수 있다.



               3. 사람의 몸통과 같은 성곽



                정조는 <홍익정공주고> 성첩인(城堞引)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라에 성곽이 있는 것은 사람에게 몸통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안으로 덕을 쌓아 많은

               백성들을 살게 하고, 밖으로는 변방을 튼튼히 하여 적을 방어한다. 1개 도시에서 3리(里)의 성
               (城), 7리의 곽(郭)도 중요한 의의를 갖는 것인데, 더구나 사방의 표준이 되고 있는 서울에서야

               어떻겠는가. 우리나라가 성 잘 지키기로 천하에 소문이 나 있을 정도여서 수·당의 1백만 군대
               가 안시성 아래 진을 치고 있을 때 성 위에서는 천자를 배알하고 있었다 하여 그것이 아직도 미
               담으로 전해 오고 있지만, 그게 어디 지리적인 조건뿐이겠는가. 역시 인화(人和)의 소치인 것이

               다.”





               28) <홍재전서> 제50권 책문(策問) 3 지세(墬勢)
               29) <홍재전서> 제50권 책문(策問) 3 지세(墬勢)
               30) <일성록> 정조 17년 12월 08일



               108  김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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