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4 - 오산학 연구 1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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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주민들에게 독립신문과 독립사상을 고취하는 창가집, 대한민보 등 수십 매를 배포하였으

               며, 1920년 6월 20일 복수리 임순남(당시 19세), 남수리 최문순(당시 18세), 산루리 이선경(당
               시, 19세) 등의 여학생을 규합하여 구국민단이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하여 박선태는 총장, 이득
               수는 부총장이 되어 수원에 거주하는 김석호, 김노적, 윤귀섭, 김병갑, 이희경, 신용준 등을 동

               지로 규합하고,
                 제1, 일본의 국권 강탈에 반대하여 조선을 일본의 통치하에서 이탈케 하여 독립국가를 조직

               할 것.
                 제2, 독립운동을 하다가 입감되어 있는 사람의 유족을 구조할 것의 2대 목표를 실행하다가
               이종상, 박선태는 징역 2년. 임순남, 최문순, 이선경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의 형을 받았

               다.


               2. 송산면(松山面)



                 1919년 3월 26일 송산면 사강리의 홍면(일명 홍면옥) 등 120명의 계원들이 사강리 구장 홍
               명선 집에 모였을 때 홍교선의 발의로 그날 오후 홍면, 홍효선이 일동을 이끌고 송산면사무소

                                      20)
               로 가서 독립만세를 불렀다.
                 독립만세 소리를 듣고 모여든 200명의 시위대는 면장이하 면서기들을 면사무소 앞마당에
                                                               21)
               끌어내고 만세를 부르게 하며 밤 11시까지 시위를 벌였다.  다음날인 1919년 3월 27일 송산면
               에서 시위가 계속되었다.        22)
                 1919년 3월 28일은 사강리 장날이었는데, 홍면과 홍효선, 이규선이 주도하여 사강시장에 있

               던 700명이 오후 2시 경 송산면사무소 뒷산으로 집결하여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이때 수원
               경찰서 노구치 순사부장과 남양주재소 마스우치 순사, 조종환, 김학웅 순사보가 3월 28일 사

               강리 시위진압을 위해 파견 나와 만세를 연달아 부르고 있는 시위 군중에게 권총을 뽑아 들고
               위협하며 시위를 제지하면서 홍면, 홍효선, 예종리를 체포하였다. 순사에 체포된 이들 중 홍면
               은 일본 경찰이 권총으로 시위 군중을 위협하며 해산시키려 하는 것을 보고 벌떡 박차고 일어

               나 만세를 부르며 일본 경찰에게 항의하자 노구치 순사부장이 홍면의 오른쪽 어깨를 쏘아 쓰





               20)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자료집5』, 1972. 389쪽.
               21)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자료집5』, 1972. 391쪽
               22) 국사편찬위원회, 『한국독립운동사2』, 「경기도장관보고」, 1968. 263쪽.



               112  강경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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