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9 - 오산학 연구 1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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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4월 3일 장안면, 우정면의 삼괴지역에서 장안면과 우정면사무소, 화수리주재소를 습
격했다는 소식을 듣자 발안지역에서도 대대적인 시위운동을 벌이기로 하고 4월 4일 급히 이인
규, 이우현, 권종대, 김영태 등 여러 제자들을 불러 4월 5일 발안 장난을 기해 만세를 부르고
주재소를 습격하기로 하였다. 34)
발안 장터에 사방에서 장꾼들이 모여들었다. 이정근은 아침 일찍 제자들에게 시켜 장꾼들이
장짐을 풀지 못하게 하는 한편 제자들을 요소요소에 배치했다가 낮 12시를 기해 일제히 조선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것을 신호로 군중들은 목이 터져라 만세를 불렀다. 삽시간에 8백여 군중이 하나가 되어 발
안 장터가 떠나갈 듯이 만세 소리가 이어졌다. 이때 발안에는 상주해 있던 아리다 중위 휘하
수비대 병력이 장안리에 출동해 있는 사이 수원에다 1개 소대 병력의 지원을 요청해 놓고 있는
상태였다. 수촌리, 제암리, 고주리 주민들은 주재소로 몰려가 투석전을 전개했다. 사이다가 배
치해 놓은 순사들이 공포를 쏘자 군중들은 주춤하고 물러섰다가 다시 돌을 던져 주재소 유리
창들을 깨부수기 시작했다. 일본 경찰들은 군중을 향해 위협사격을 가했다. 이때 이정근이 군
중들을 향해 소리쳤다. “물러서지 말고 주재소를 습격하라!”그러나 일본 경찰들의 위협사격 때
문에 접근할 수 없자 투석전으로 대응했다. 수비대가 주재소 주위를 에워쌌고, 주재소 안에서
위협사격을 가하던 순사들은 칼을 빼들고 수비대 사이에 배치되었다. 35)
이정근은 다시 소리쳤다. “주재소를 부숴라,”수비대와 순사들은 총 대신 칼을 뽑아 들었다.
이정근이 수비대장 앞으로 다가서며 혼신의 힘을 다해 ‘조선독립만세’를 힘차게 외쳤다. 수비
대장은 칼로 이정근의 복부를 내리쳤다. 그러자 이정근은 흘러내리는 복부의 피를 손으로 받
아 수비대장의 얼굴에 뿌리며 조선독립만세를 부르다 땅바닥에 쓰러졌다. 이 모습을 본 제자
김영태는 분노에 찬 눈을 부릅뜨며 조선독립만세를 높여 부르니 군중들이 일제히 따라 만세
소리를 드높혔다. 그러자 수비대의 칼날이 김영태도 내리쳤다. 이 광경을 보던 팔탄면의 김경
태가 군중들 앞으로 나서며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그도 수비대의 칼날에 그 자리에서 즉사
하고 말았다. 군중들은 이 처참한 광경에 치를 떨며 더욱 더 분기를 내며 돌을 던졌다. 이후 많
은 발안리, 수촌리, 고주리의 사람들이 주재소 안으로 끌려 들어갔다.
김영태와 이정근도 피투성이가 된 채 주재소 안으로 끌려들어갔다. 김영태는 칼이 빗나가
중상에 그쳤지만 이정근은 상처가 깊어 혼수상태에 빠져있었다. 얼마 뒤 이정근은 사이다를
34) 경기도사편찬위원회, 경기도항일독립운동사, 1995. 308쪽.
35) 경기도사편찬위원회, 경기도항일독립운동사, 1995. 308쪽.
1910년대 항일운동과 오산 3·1독립만세운동 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