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8 - 오산시 지명과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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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굴밖(터)
내삼미1동의 서쪽으로 경부선 철도가 지나는데 국도와 마을을 연결하는 마을길에
철로 밑으로 굴이 있어 서쪽을 이르는 말이다.
경주김씨 참판공파 족보에는 다음의 지명이 등장한다. 당앞산(堂前山), 문필봉(文筆
峰), 망골, 귀신터(具新垈), 문시면(文市面) 자자리(慈資里), 사현산(沙峴山) 등의 지
명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아울러 은산재, 구삿(어린아이가 죽으면 묻었다고
함), 구삿밭, 석산골, 큰논(한배미), 양짓말, 음짓말, 부름구리(교육청 맞은편 동탄신
도시 쪽 너머에 있는 산), 성너머(언제인가 마을사람들이 밖에서 마을의 안쪽이 보
이는 것이 마을의 발전에 장애가 된다고 하여 성 모양으로 흙을 날라 언덕을 쌓았
다고 한다. 그렇게 하여 마을에서 이곳을 성너머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현재에
는 그 모습은 남아 있지 않고 마을 입구의 도로 가운데의 전신주가 있어 이러한 정
황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성황당(성황당이 돌탑이었다고 전하고 있으나 돌탑의
흔적을 찾을 수는 없다. 다만 향나무에 치성을 드리는 흔적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이곳이 성황이었음을 짐작하게 하고 있다.) 그리고 가재울골의 위쪽을 담뒤라 하였
으며, 탑리를 테마루라고도 하였고, 동탄의 신척리에 배마루라는 지명과 송리를 솔
아리, 반송리를 반쟁이 혹은 동지니라고 불렀다는 지명들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반송리란 나무 소반을 만드는 곳이라는 의미라 전한다. 그리고 옛 철길이 폐쇄된
곳 바로 넘어 교육청 올라가는 길에 다리가 있어 쪽다리라 불렀으며, 내삼미리를
안새밀, 안새미리라 불렀다는 이름과 송장산, 송장들 등의 지명이 전하였던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 내삼미전설
먼 옛날 한양에서 남쪽으로 떡점거리(떡장거리:餠店병점) 로 불리던 병점을 지나 오
산(烏山)으로 오자면 엄나무쟁이가 있다. 이 근처에는 죽미령 고개가 있고 반월봉과
필봉산, 그리고 금반향이 있다. 동으로는 오매천(烏梅川)을 이어가는 동탄 금곡 신
암(新庵)이 있으며 주록소일(走鹿素一)이 있다. 남쪽으로는 오산화성궐리사가 있고,
북으로는 태안능리가 있고 서쪽으로는 독산성 세마대의 권율장군의 전승지가 있다.
이 죽미령 일대를 삼미라고 부르는데, 고려시대까지는 필봉산을 송산(소나무골)이라
하였다.
“조선시대 정조대왕이 왕위에 오르시어 망부인 사도세자의 주검을 망극하여, 양주
배봉산으로부터 태안 안녕리 화산으로 능을 이장하시고 효를 다하시기 위하여 수시
로 능으로 거동 행차하시었고, 능을 가까이서 행차 참배하시기 위하여 도성을 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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