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4 - 오산시 지명과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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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백성들이 이를 편하게 여겼습니다.”
하니, 호조에 내리어 황희와 허조 등의 의논을 경기 감사에게 이문하여 편리하고
편리하지 않은 점을 조사해서 아뢰도록 하였다.
③ 『세종실록』, 세종 20년(1438) 3월 15일(기해)
경기도 청호역(菁好驛)은 도로 수원에 붙이고, 또 분행(分行) 좌찬(佐贊) 두 역은 더
욱 쇠잔(凋殘)함이 심하므로 노비를 더 주었다.
④ 『세조실록』, 세조 6년(1460) 2월 5일(임자)
병조(兵曹)에서 아뢰기를,
“여러 도(道)의 여러 역(驛)에 역승(驛丞)을 없애고 찰방(察訪)을 두고서 혹은 한
도, 두 도, 세 도, 네 도를 아울러서 하나의 도로 하였으나, 역로(驛路)가 너무 멀어
서 때때로 순시(巡視)할 수가 없습니다. 또 역마(驛馬)를 타고 왕래하는 자가 한 도
라고 생각하여 원근(遠近)을 헤아리지 아니하고 수 일정(數日程)을 달려서 지나가다
가 인마(人馬)가 함께 곤폐(困弊)하여지니, 그 폐단이 작지 않습니다. 청컨대 경기
(京畿)와 하삼도(下三道) 여러 역(驛)의 멀고 가까움을 헤아려서 도를 나누소서. 경
기(京畿)의 중림도(重林道) 소관(所管)인 인천부(仁川府)의 중림역(重林驛) · 경신역
(慶新驛), 금천현(衿川縣)의 반유역(盤乳驛), 양천현(陽川縣)의 남산역(南山驛), 통진
현(通津縣)의 종생역(種生驛), 부평부(富平府)의 금륜역(金輪驛), 안산군(安山郡)의
석곡역(石谷驛)과, 동화도(同化道)의 소관(所管)인 수원부(水原府)의 동화역(同化驛)
· 청호역(靑好驛) · 장족역(長足驛), 남양부(南陽府)의 해문역(海門驛), 양성현(陽城
縣)의 가천역(加川驛), 안성군(安城郡)의 강복역(康福驛)과, 양재도(良才道)의 소관
(所管)인 금천현(衿川縣)의 양재역(良才驛), 광주(廣州)의 낙생역(樂生驛), 용인현(龍
仁縣)의 구흥역(駒興驛) · 금령역(金嶺驛), 죽산현(竹山縣)의 좌찬역(佐贊驛) · 분행
역(分行驛), 이천부(利川府)의 아천역(阿川驛) · 오천역(吾川驛), 음죽현(陰竹縣)의
유춘역(留春驛) · 무극역(無極驛) 총 23역(驛)을 합하여 한 도로 하고 경기좌도(京畿
左道)라고 칭하여 경기좌도 찰방(京畿左道察訪)으로써 이를 맡아 보게 하소서.(후
략)”
⑤ 『성종실록』, 성종 7년(1476) 1월 21일(병인)
청호역(菁好驛)에 정역(定役)된 동질이(同叱伊) · 조산(趙山) · 광수(光守) · 김난(金
難) · 이급(李笈)……(후략)
⑥ 『각사등록』
청호역 마름 이화중을 사칭한 許哥를 체포할 것
訓令 水原郡守 李吉夏 第一號
建陽二年二月十一日(1897년 02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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