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7 - 오산시 지명과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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훤이  사선을  빼앗아  국고로  수송하였다.  경륜의  사위  김천서(金天緖)가  마침  수원

                  (水原)의  장서기(掌書記)로  있다가  그것을  가져다  경륜에게  바치고  또  왕에게  호소
                  하니,  왕이  훤을  면직시키고  송유의(宋由義)로  대신하였으며,  나중에는  훤을  양주
                  (襄州)  부사(副使)로  좌천시켰다.


                  ⑭  『동사강목』  제11  하

                  을해년  충렬경효왕(忠烈景孝王)  원년  휘(諱)는  거(昛),  구휘는  심(諶)  또는  춘(賰)이
                  고,  원종의  맏아들이며,  어머니는  순경  태후  김씨이다(송(宋)  공제(恭帝)  덕우(德祐)
                  원년,  원  세조  지원  12년,  1275)
                  11월……○  전라도  부부사(全羅道部夫使)  김훤(金晅)을  파직하였다.  그때에,  여러
                  도에  부부사를  나누어  보냈는데,  총랑(摠郞)  김훤은  전라도로  갔다.  청호역(菁好驛),

                  지금의  수원부(水原府)  동쪽  25리에  있다)에  이르니,  전라도  안찰사(全羅道按察使)
                  노경륜(盧景綸)이  서울로  내선(內膳  임금의  음식)을  역수(驛輸  역에  속한  말ㆍ수레
                  로  나르다)하는  것이  매우  많은데,  사선(私膳)이  반이나  되므로  훤이  그  사선을  가
                  져다가  국고(國庫)로  날랐더니,  경륜이  왕에게  일렀으므로  왕이  훤의  벼슬을  파면하
                  고  곧  양주부사(襄州副使)  양주는  지금의  양양(襄陽)로  좌천시켰다.



                  ⑮  『신증동국여지승람』  제9권,  경기(京畿),  수원도호부(水原都護府)
                  청호역(菁好驛)  부의  동쪽  25리  되는  곳에  있다.


                  ⑯  『일성록』,  정조  1799년  8월  20일(병오)

                  召見華城留守  徐有隣  外營總制  柳文植  判官  金思羲  迎華察訪  李元膺于維與宅
                  予敎文植曰本府軍政旣令總制專任近來軍制果能就緖耶文植曰束伍軍之排鋪略已成樣而
                  亦無疊役之弊矣予曰朝者動駕時見之則長樂隊頗能成樣矣有隣曰本府人大抵皆能善使焉
                  矣予曰外營將校輩軍裝諸具之外裏衣俱皆解明此亦可見侈濫之習何爲而如是乎文植曰衣
                  服之間果多濫習而所侈者只是外具至於行陳兵書等實事都不能熟習極可悶矣予敎元膺曰

                  本驛諸弊今果何如元膺曰虛戶之弊今果無之而菁好驛合驛後一站驛路爲七十里之遠故不
                  無弊端今若分置則似爲便好矣予曰此果無弊耶有隣曰果爲便好而以五六戶之難以充額爲
                  拘礙之端矣予曰本驛馬戶總爲幾何元膺曰三十五戶矣予曰無論某條經綸必須另加釐弊期
                  有實效也



                    한편  『춘향전』에는  한양에서  남원  가는  여로(旅路),  이른바  노정기(路程記)가  두
                  번  나온다.  변학도가  남원부사로  부임하는  길이  그  하나이고,  이도령이  암행어사가
                  되어  내려가는  길이  다른  하나이다.  여기에도  청호역이  나온다.
                    “남대문  밖  내달아  칠패  팔패  청파  배다리  너푸내  얼풋  건너  오야고개  바삐  넘어
                  동작이  월강하여  승방들  내달아  남태령  바삐  넘어  과천읍내  중화하고,  찬우물  자진

                  골  사그내  얼른  지나  지지대  하마하고  미륵당이  내려가니  포기정이  거기로다.  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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