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4 - 오산문화총서 8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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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토하고 구들시설과 기단 등을 시설하였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 범위가 상당히 큰 편이다. 벽
일부가 잔존하였고 내부에 저장구덩이가 존재하고 있어 비교적 신분이 높은 사람의 집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집터는 대부분 파괴되었지만 다량의 유물이 출토되었는데, 단언할 수 없으나
사회적 위상과 재력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그림 16. 탑동·두곡동 유적 14지점 9호 집터 및 출토유물(기호문화재연구원 2013)
이밖에 궐동, 누읍동, 지곶동 328-3번지 유적에서 건물터와 집터가 조사되어 고려시대 마을
의 모습을 추정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북송의 사신이 고려에 방문
18)
하여 기록한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 의 내용이 주목된다. 의하면 백성들이 거
처하는 형세가 고르지 못해 벌집과 개미구멍 같고, 풀을 베어다 지붕을 덮었고 집의 크기는 서
까래 두 개를 세워 놓은 정도에 불과하다고 하였다. 대부분 흙 침상이며 땅을 파서 온돌을 만들
고 그 위에 누웠고 겨울이 매우 추우나 솜옷 같은 것이 적었다고 한다. 기와를 덮은 부유한 집은
열의 한두집 뿐이라 하므로 한 마을 단위에 부유한 소수의 집과 벌집이나 개미구멍과 같은 작은
집이 여러 채가 주변에 분포하였고 그 위치는 대체로 완만한 산 능선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3. 생산시설
생산시설이란 생활과 관련된 각종 물품을 만들던 여러 시설을 말한다. 생활물품으로는 항아
리나 옹기 등 도기, 고려 청자·백자 등 자기, 나무를 깎아 만든 그릇과 식기 등의 목기, 주물을
18)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https://db.history.go.kr/)를 이용하였다.
62 강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