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40 - 오산문화총서 8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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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풍루(新豐樓)에 거둥하여 사민(四民)에게 쌀을 나눠주고 굶주린 백성들에게 죽을 먹여
주었다. [수원부의 사민 5백 39구(口)에게 미곡 1백 98석(石) 10두(斗)를 주고, 진휼(賑恤) 대
상인 백성 4천 8백 13구에게 미곡 1백 69석 9두(斗) 7승(升)과 소금 12석 12두 9승 9합(合)과
죽을 쑬 미곡 9석 9두 2승과 미역 9백 25립(立)과 간장 1석 12두 7승 4합을 주었다]
<정조 19년 윤2월 14일 1번째 기사>
· 상이 혜경궁을 모시고 용양(龍驤) 봉저정(鳳翥亭)에서 잠시 머물러 점심 수라를 들고 환궁
하였다. 행차가 시흥을 지날 때 부로(父老)를 불러보고 백성의 고통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
(중략)… 그들이 이미 행차를 바라보았고 나 역시 그들을 불러 물어보게 된 만큼 정말 고질적
인 병폐와 제거해야 할 폐단이 있다면 숨기없이 모두 진술토록 하라.“ 하고, 이어 지난해 추
수 때 상환 기한을 연기시켜주었던 환곡(還穀)을 일체 탕감해주라고 명하였다.
<정조 19년 윤2월 16일 1번째 기사>
『조선왕조실록』의 내용으로 살펴보았을 때, 혜경궁을 모시고 현륭원을 가는 과정에 있어서 부
로(父老)를 불러서 백성들의 고충을 들어주었다. 또한, 이전에 수원부를 중심으로 주어진 세금
에 대한 혜택도 백성들의 상황을 들어보고 지속적으로 혜택을 각 고을마다 부여하는 모습도 확
인된다. 공자 사당에 작헌례(酌獻禮)를 지내라고 명한 부분과 화성축조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
지고 있다는 부분이 화성의 천도를 염두해 둔 것으로 판단된다.
④ 1796년부터 1797년까지
1796년 수원 화성 건립되었으며, 큰 경로의 틀은 동일하나 화성행궁에서 만년제를 통해서 현
륭원으로 이동하였다. 1796년부터 1797년까지의 능행차 경로는 아래의 표11와 같다.
표 11. 1796~1797년 정조 능행차 현황
연 도 기 간 경 로 비 고
1796 5일
(정조20) (01.20.~01.24.) 창덕궁 → 배다리 → 노량행궁 → 시흥행궁 → 화성 완공
만안교 → 안양행궁 → 군포사거리 →
1797 3일 사근행궁 → 화성행궁 → 현륭원
(정조21) (01.29.~02.01.) 만년제~안녕리 화송 봉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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