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43 - 오산문화총서 8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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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남헌(落南軒)에 나아가서 본부(本府)의 무사에게 활쏘기를 시험보여 차등 있게 시상하
고, 각무차사원(各務差使員)을 불러보았다.
<정조 21년 8월 18일 1번째 기사>
· 어가를 수행한 장신(將臣)에게 명하여 군병을 위로하게 하였다. …(중략)… “선부(船夫)가
1년에 두 차례나 부역을 당하니 노고가 매우 심하다. 오늘 즉시 풀어 보내어 생업을 잃는 일
이 없도록 하라.” 하였다.
<정조 21년 8월 19일 1번째 기사>
『조선왕조실록』의 내용으로 살펴보았을 때, 김포 장릉을 거치면서 수원부뿐만 아니라 김포와
과천 백성들의 고통을 해소하기 위해서 노력하였다. 또한, 능행차를 하는 과정에서 무예훈련을
꾸준하게 실시한 모습과 1797년 두 차례 행차를 실시하면서 고생한 군병들을 위로하기 위해서
노역을 풀어주었다. 능행차를 단순하게 행사의 의미가 아니라 백성들의 고충을 들어주는 역할
과 부대훈련을 동시에 진행한 것으로 판단된다.
⑥ 1798년부터 1800년까지
1798년부터 1800년까지 총 3차례 능행차를 실시하였으며, 능행차를 하는 과정에서 헌릉을
경우한 1799년을 제외하고는 장릉을 경유하기 이전과 동일한 경로로 이동하였다. 그 경로는 아
래의 표16와 같다.
표 16. 1798~1800년 정조 능행차 현황
연 도 기 간 경 로 비 고
1798 5일
만년제 개축
(정조22) (02.01.~02.05.)
창덕궁 → 배다리 → 노량행궁 →
1799 2일
시흥행궁 → 만안교 → 안양행궁 → 헌릉 경유 현륭원 행차
(정조23) (08.20.~08.21.)
군포사거리 → 사근행궁 → 화성행궁 → 현륭원
1800 3일
정조의 마지막 행차
(정조24) (01.16.~01.18.)
오산의 문화재와 정조대왕 능행차에 대한 검토 241